못해 먹겠다_이은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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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 먹겠다

이은상 목사

칠순이 훨씬 넘으신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서 不惑(불혹)이 넘은 아들 목사에게 일러주십
니다. 

“요즈음 세상은 너무 착하게 살아도 안된단다. 요즈음 대통령의 마음이 좋아서 아이들까
지 대통령 알기를 우습게 알고 놀리는 것 좀 봐라.”

이 권고의 말씀에 내심 착하게 살기로 작정한 목사의 마음이 끌립니다. 왜냐하면 대통령
이 못해 먹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어머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못해 먹을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
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요즈음 세상 정말 해먹을 만한 것
이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형도 못해 먹을 노릇이고, 그 와중에 떴다방도 그렇고, 전교조
도, 장관도, 총리도, 교사도, 학생도 그리고 국민직분도 못해먹을 노릇입니다. 이 말이 
우스개든 아니든 정말 이 사회가 요지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이런 경우
를 가리켜 개판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렇다면 이 사회가 갈피를 못 잡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리더십의 부재? 불합리한 법과 
제도? 민주주의의 과도기적 현상? 아닙니다. 이 사회가 이렇게 시끄러운 것은 죄성을 가
진 인간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즉 ‘나만 잘났다’는 이기주의가 지금 꽃을 피우고 있다
는 것입니다. 다만 개인이기주의가 집단을 이룬 것뿐입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으이
쌰 으이쌰’ 실력행사들의 요구사항가운데는 수긍이 가는 점도 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걸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행동의 배후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기주
의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민주사회의 특징이라고 하
지만 민주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회인 것입니다. 이 세태가 정말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습
니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그러면 교회는 어떨까요? 교회도 세상과 별 다른 점이 안보입
니다. 이런 경우를 세상사람들은 ‘도나 개나(윷놀이)’라고 합니다. 

최근 교인 3만 여명이 모이는 초대형교회가 ‘ACTS 29(사도행전29장)’라는 새로운 프로젝
트를 세우고 수도권중심으로 위성교회 
설립에 박차를 가하다가 필자가 목회하는 지역에 
지교회를 설립예정 중에 있습니다. 주변 지역교회들은 이런 소식을 듣고 名品(명품)을 
내세운 체인점식 교세확장이라고 반기를 들고나서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필자의 견해
로는 그야말로 소박하게 목회하는 기존교회들의 목회지에 뛰어들어가는 초대형교회의 기
업형 세력확장도 문제이지만 또한 이를 주도적으로 반대하는 교회도 알고 보면 넓은 주
차장을 자랑하는 대형교회인 것을 보면 모두가 다 이기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생각합니
다. 결국 세상이나 교회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이기주의를 쉽게 떠날 수 없나봅니다.
 
한 칼럼리스트는 이기주의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남이 고집부리면 편협 내가 고집부리
면 의지, 남이 눈이 나쁘면 텔레비전을 밝혀서 내가 눈이 나쁘면 책을 너무 읽어서, 남
이 고향자랑하면 지역감정 내가 고향자랑하면 애향심, 남이 부동산 사면 사기꾼, 내가 
부동산 사면 재테크, 남이 잘살면 난개발, 내가 잘살면 전원주택, 남이 배꼽티 입으
면 ‘아예 다 벗지 그래’ 내가 배꼽티 입으면 ‘어때 
시원해 보이지…'” 

그렇습니다. 이기주의는 언제나 내가 중심입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교회가 
하면 선교 다른 교회가 하면 문어발식 확장, 우리교회가 하면 개혁 다른 교회가 하면 자
유주의, 우리교회 성전건축은 새로운 패러다임, 다른 교회 성전건축은 성장주의… 
죄는 언제나 나만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하며 나에게 일어나는 일만이 긴급하다고 생각하
게 합니다. 그래서 죄인은 자신의, 자신을 위한, 자신에 의한 삶을 사느라고 평생을 다 
보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신자의 모습은 놀랍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신비로운 
모습을 몸으로 비유합니다(엡4:4, 고전12:27). 

나눌 수 없고 결코 찢을 수 없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속에 유
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다 한 몸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이 진리는 마치 삼위일체를 
나눌 수 없는 신비와도 같습니다(엡4:4-6). 

그러므로 교회의 병적인 개인주의는 거반 이단의 수준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귀
담아 들을 말은 ‘못해 먹겠다’는 유행어가 아니라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
키라(keep)’는 하나님의 
권고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유행어를 사용하신다고 생각해
보세요(창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