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같이 빛날 부활의 소식
< 이진수 목사, 은혜교회 >
그때 내 나이 5살 아니면 6살쯤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아직 그때의
그 장면이 지워지지 않고 떠오른다.
죽음 장면 목격한 첫번째 경험
관 위에 엎드려 몸부림치는 하얀 소복의 여인. “못 간다아! 못 간다아! 나
를 두고 못 간다!” 목 놓아 울부짖는 그녀를 사람들이 관에서 억지로 떼어
내었다. 그 관은 철 침대에 실린 채 좁은 굴방으로 들어가고 철문은 닫혔
다. 여인은 바닥에 쓰러져 울고 또 울었다.
누나를 화장하는 당감동 화장터에 따라 왔다가 본 장면이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 남편을 잃은 여인이었던가 보다. 곧 이어 누나의 벌겋게 달은 뼈가 철
침대에 실려 굴방에서 나왔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쇠 절구통에 넣고 찧었
다. 이것이 내가 죽음을 본 최초의 기억이다.
그후 죽음은 이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강제로 헤어지
게 하는 이별이요, 가장 철저히 헤어지게 하는 이별이다. 한번 그렇게 헤
어
지고 나면 이 세상에서 다시는 만날 길이 없다. 그래서 죽음은 가장 큰 슬픔
이요, 절망이다.
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시대의 남녀노
소를 불문하고 이 죽음이 찾아가지 않는 이가 없다. 그 죽음은 우리 가족에
게도 찾아왔다. 내가 대학생이던 어느 가을 새벽, 아버지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아버지의 양팔을 꽉 붙잡고 불렀다.
“아버지이! 아버지이!” 그러나 당신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던 외아들의 간절
한 부름에도 아버지께서는 떠나셔야만 했다. 죽음의 힘을 감당하실 수 없어
서. 그때 나는 빠져나가는 아버지의 생명을 붙들어 볼 양으로 아버지의 팔
을 더욱 꽉 붙잡았다. 그러나 나는 오직 아버지의 차가운 육신만 붙잡을 수
있을 뿐이었다.
죽는 자나 죽음을 막아보려는 자나 죽음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절감하
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헤어졌다. 그런데 죽음은 도무지 만족
할 줄을 모르는가보다. 그만큼 슬픔을 안겨 주었으면 되었을 텐데 세월이 얼
마간 흐른 후 그 불청객은 또 우리에게 찾아왔다. 이번에는 어머니였다. 그
죽음은 우리 어머니로
부터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 눈에 넣어도 아
프지 않을 두 손녀와 헤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그 죽음은 언젠가 또 나에게도 찾아와 남은 가족에게 이별의 아픔을 줄 것이
다. 그리움에 가슴시려 해도 죽음은 봐주는 법이 없다. 죽음은 지칠 줄도 모
른다. 아! 도대체 누가 그치게 할 수 있으랴! 이 죽음의 횡포를. 누가 멈추
게 할 수 있으랴! 이 죽음의 교만한 행진을. 누가 묶어 가둘 수 있으랴! 이
죽음의 권능을.
“내 영혼아 두려워하지 말라! 슬퍼하지도 절망하지도 말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아니한가! 죽음을 넉넉히 이기시는 생명의 주가 계시지
아니한가!”
죽음 아래 신음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
셨고, 어린 딸을 방금 잃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위로하셨
고, 외아들의 상여를 따라가며 통곡하는 나인성 과부에게 울지 말라하시며
불쌍히 여기셨던 주님. 그 분의 가슴에는 우리를 향한 한없는 사랑과 긍휼
이 흐르고 있다.
우리가 죽음 앞에 눈물짓고 있을 때, 그 가슴이 뜨거워 하늘 보좌에서 일어
나셨고 이 세상으로 달려오셨다. 그 가슴을 주체할 수 없
어서 십자가를 지셨
고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셨다. 그리고 그리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
고 부활하셨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셨고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셨다! 우
리가 부활하는 그 날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자유하게 되리라.
죽음으로 헤어졌던 사랑하는 이들과 하늘 아버지 집에서 영원한 동거를 시작
하게 될 때 얼마나 기쁠까? 그날 함께 부활한 믿음의 선진들과 만나는 즐거
움은 어떠할까?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 신앙의 절개를 지킨 주기철
목사님, 대동강에서 순교의 피를 뿌린 토마스 선교사, 바울, 베드로, 다윗,
모세, 아브라함…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부활하여 해와 같이 빛나며 살게 될 것이 기대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주를 항상 뵙고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니 그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죽음은 이별을 주지만 부활은 만남을 준다. 죽음은 절망을 주지만 부활은 소
망을 준다. 죽음은 슬픔을 주지만 부활은 감격을 준다. 이러한 부활의 소식
은 기쁜 소식이지 않는가!
소망과 감격 가져다 주는 부활
이 기쁜 소식은 성도들만이 전할 수 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그 누구도 진정
한 의미의 소망도 기쁨도 전할 수 없다. 이 부활을 아는 자로서 내 일평생
부활의 소식을 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