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해소에 교회가 나서야_장귀복_목사

0
24

불평등 해소에 교회가 나서야

장귀복_목사, 새일산교회

허도산 씨가 지은 “세계의 명 연설”이란 책이 있다. 케네디, 플랭크린, 루
주벨트, 링컨, 처칠, 나폴레옹, 히틀러 등 인간과 세계와 역사를 바꾸어 놓
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설 100여 편이 그 책에 담겨 있다. 

화제가 된 빌게이츠 졸업연설

그런데 작년에 개인적 생각이지만 그런 책에 들어갈 만한 연설이 행해져 화
제가 되었다. 바로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가 34년 만에 하버드대에
서 명예 졸업장을 받으면서 행한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제하의 연설이
다. 
“인류의 위대한 진보는 ‘발견’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견’이 
불평등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기술의 발전은 부와 보
건, 교육 등에서 다양한 불평등을 해소할 때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인생의 성공은 일의 성취로서가 아니라 불평등을 바로잡는데 기여한 공로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는 지금 자신의 연설처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엄청난 자
금을 세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약 
560억 달러) 중 세 자녀에게는 1천만 달러씩만 주고 나머지 전 재산을 사회
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했다. 
6개월 동안 준비한 연설이라 하는데 그 중심과 방향을 너무 잘 잡은 연설이
라고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언론과 매스컴의 집중
적 조명을 받았다. 불평등의 해소,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분명 힘써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어느 면에서는 자본주의 틀 속에 자리 잡은 현대 교회들이 힘써 노력
해야 할 일 역시 ‘불평등 해소’라 생각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사회에 대해 가져야 되는 책임보다는 대내적 불평등 해소다. 기독교 
내에도, 즉 교회와 교회, 목회자와 목회자 사이에도 자본주의의 약점이 그대
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형교회들은 넘쳐나는 재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고, 작은 교회들은 월세
를 내기도 힘든 형편이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모든 것이 풍성한 반면, 작
은 교회 목회자들은 먹고사는 문제 갖고도 전전긍긍해야 한다. 물론 자본주
의 경쟁 
사회에서 목회자의 능력에 따라 나타난 결과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
면 할 말이 없다. 
아니, 그래도 할 말이 있다. 빌 게이츠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통
해 최고 갑부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불평등 해소를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교회와 목회자들은 그보다 한 
수 위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교회와 목회자들은 모든 것이 하나
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내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노력이 너무 미미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과거에는 어느 한 지역에 큰 교회가 있으면 그 주변 교회들이 같이 성장했
다. 왜냐하면 큰 교회들이 돕고 세워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한 
지역에 대형교회가 들어가면 주변의 교회들은 모두 죽는다. 교인들을 싹쓸이
해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성전까지 지으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
이 작금의 교계 분위기다. 
큰 교회들에는 그야말로 ‘사’자가 붙은 교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작은 
교회들에는 그런 교인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작은 교회들은 그런 교인들이 
한 두 가정만 있어도 힘을 얻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빈익빈부익부의 자
본주의 모순이 그대로 교회에도 드러나고 있다. 
물론 목회자가 조장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교계에 불평등의 해소
를 위한 인식과 노력과 가르침이 부족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도시교회
와 지방교회, 대형교회와 소형교회, 대교회 목회자와 작은 교회 목회자, 또 
교인들 상호간에 있어서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아니라 해소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의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
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후 8:14-15). 이 가르침을 따른다
면 교회와 목회자들은 기독교 내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힘써야 되지 않겠는
가? 구체적 실현 방법은 차지하더라도 일단 ‘불평등 해소 의식’만이라도 
가져야 할 것이다. 

교회는 평균의 법칙 따라야

빌 게이츠의 말을 빌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성공적 목회는 교회 사이즈
가 아니라 불평등을 바로 잡는데 기여한 공로로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