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_정문영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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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정문영 장로_큰빛교회, 총회 부회계

며칠이 지나면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세계적 절기
인 성탄절이다. 이즈음에서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을 살피는 것은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성육신 의미 되새길 때

누가복음 19장 41-44절 말씀은 인류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이제 그 목적을 이루고 죽으시기 위해 예
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이다.
예루살렘 성 가까운 곳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축제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군
중들과 대조적으로 성을 보시고 비탄에 빠지셨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께서
는 평화롭고 웅장한 자태의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선지자들을 능욕하고 돌
로 쳐죽일 뿐 아니라 또 예수님 자신을 죽이고 결국 심판으로 멸망할 예루살
렘의 미래를 보셨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세끼를 날게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 자녀를 모으려고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눅 13:34).
이처럼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죄악을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우셨다. ‘우시
며’라는 말은 ‘소리내어 통곡하는 행동’을 표현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는 주변의 많은 시선을 의식할 틈이 없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며 통곡
하셨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지금은 
어떤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오직 예루살렘에 가까이 더 가까이 가
기만을 원하셨으리라. 이처럼 가까이 가기 위하여 성육신하셨고 친히 눈물
을 흘리심으로 그 백성들에게 죄를 인하여 나와 같이 울어야 함을 알려주신
다.
죄의 값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직 죄없는 의인이 사망을 받음으로써 하나님
의 공의를 만족케 해야 한다. 이것이 절대 정확한 공평의 법이다. 그 공의
를 만족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모양과 형상으로 전인격적으
로 성육신하셔서 이처럼 가까이 오셨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과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기보
다는 하나님을 인간의 소욕과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끌고 내려오는 병이 
들었다. 구원을 위해서 가까이 찾아오신 예수님을 끌어내려 자기들의 정치 
경제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니 죽이고 말았다. 이것이 하나님
과 단절되고 죄성에 빠져 생긴 질병이요 멸망의 이유인 것이다.
이처럼 선민 이스라엘은 이 세상의 가치 평가 판단의 기준과 원리의 임시적
인 벽으로 둘러싸여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그 보내신 자를 죽이고 말았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에게 증거하는 것처럼 오늘날 교회는 신의 성품
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기를 소원해야 한다. 
그런데 크고 아름다운 교회, 재정적으로 안정된 교회, 복지 정책이 자리잡
은 교회만을 부러워하며 기회만 있으면 바꾸어 타려고 하는 모습을 너무 쉽
게 찾아 볼 수 있다. 
모세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바울이 배설물로 치워버린 스스로 속고 속이는 세
상의 원리와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보다 오히려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고 경쟁
하고 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욕심으로 가득 찬 세대

더구나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
을 수 없음에 숙연해질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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