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배우며
전현 목사_명성교회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거닐며 우리도 주님을 닮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꿀 수
있으면 좋겠다. 외적인 아름다움이야 누구나 쉽게 가꿀 수 있지만 내적인 아
름다움을 가꾼다 함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꾸준
히 가꾸어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더 힘들다.
내적 아름다움 절실해
우리의 마음이 장미만큼 화사한 아름다움이 아니더라도 백합만큼 청초한 아
름다움이 아니더라도 달밤에 겸손하게 피어나는 박꽃만큼의 소박한 아름다움
만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외식이나 가식이 없는 있는 그대로를 나타내 보려고 하는 마음의 박꽃과 같
은 마음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억지로 지어내는 어색한 표정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진실된 아름다운 표정으로서의 마음
만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누리를 밝게 비추어주는 태양만큼의 강렬한 빛이 아니더라도, 밤하늘을 밝
게 밝혀주는 달빛만큼의 황홀한 빛이 아니더라도 우리를 아는 이들의 마음
을 조
금이라도 즐겁게 기쁘게 할 수 있는 그런 밝은 빛으로 우리네 마음이
따뜻한 빛을 밝힐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성경 마태복음 5장 14절에 귀를 기울여 보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주
님을 배우며 우리는 참된 주님의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네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은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보답을 해주신다. 우리네가
주님을 배반하지 않으면 결코 주님도 우리를 배반하지 않으신다. 우리네가
우리 자신의 빈 마음을 그대로 주님 앞에 내어 보이면 주님은 우리네의 빈
마음에 온유, 사랑, 겸손, 진실을 가득 채워 줌으로써 참된 주님을 깨닫게
해 주심을 배울 수 있으리라. 우리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기쁨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들은 독자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것을 선호할지 모른다. 그리
고 남을 위해 내가 홀로 관제로 부어지는 것을 커다란 희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그는 혼자 믿음의 영웅
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남을 위한 자기 희생도 이기적 일 수 있다. 좋은 일
도 같이하기보다는 혼자 마음이 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바울은 “너희 믿
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
도” 라고 말했다. 관제는 이미 제단에 올려진 제물 위에 부어지는 것이다.
그는 혼자서 관제와 같은 제물이 된 것이 아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이미 행
하는 믿음의 제사와 봉사 위에 자신도 동참하여 더 온전한 희생 제물이 되도
록 하겠다는 것이 바울의 뜻이었다. “바울의 기쁨” 은 함께 누리는 기쁨이
었다
개인주의적인 봉사나 헌신에서가 아닌 다른 성도들이 헌신에 참여하는 지체
의 역할을 통해 누려지는 기쁨이었기에 바울은 교회 전체를 향해 함께 기뻐
하자고 외쳤다.
우리는 주님의 인내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인내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기
다리고 겸손해지고 진실을 가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이기심과 합리주의로 가
득 찬 현실이라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주님을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
생과 봉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있음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
는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의 인내 배워야
“주님, 제가 지금까지 사랑했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저의 우상들이었습
니다. 그것은 저를 살찌운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을 오염시키고
정신을 오도
했으며 영혼을 메말렸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사랑이 내 영혼의 회복을 위한
자비의 표현인 것을 깨닫고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는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
을 바라보며 연연해하지 않겠습니다. 이 연민의 마음으로부터 저를 온전히
해방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발아래 앉아 주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
며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