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김수홍 목사_합신 초빙교수
최근 들어 우리는 무서운 도청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좀 과장된 표현
일지는 모르지만 한국은 도청공화국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전(前) 국가기관
의 모(某) 팀(team)이 모 기업 불법대선자금 관련 도청 테이프를 수천 개나
만들어 가지고 있다는 것이 폭로되어 나라 전체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테이프는 정재계의 최고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녹음한 녹음 테이프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모 국가기관의 ‘X파일’이라는 기사가 매일 매
스컴을 거의 메우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
그 불법대선자금 관련 도청테이프를 폭로한 모 직원은 말하기를 “고급 음식
점, 요정, 룸살롱 등에서 유력인사들의 회동 장소에 직접 도청기를 설치했
다”고 밝혔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사적인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
고 있는가를 녹취했다는 것이다. 그 직원은 말하기를 “최고의 생생한 정보
들이고 가장 심각한, 가장 깊숙한 얘기들”이라며 털어놓았다.
이 녹취 보고
서는 당시 야당 의원들의 약점을 잡는 것 외에도 정권 실세들의 충성도를 파
악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도청테이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도청 공포증에 시달
리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 내 음성이 도청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불안하
다는 것이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옛 속담이 있지
만 그러나 옛날에는 누군가가 사람들의 은밀한 말을 듣고 옮기는 데서 끝났
지만 요즈음에는 녹음까지 해서 사람을 잡고 있으니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또 사람들의 무서운 눈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서 요즘 각종 분야에서 법규를 위반한 사람들을 신고하여 돈을 타내는 각종
`포상금 사냥꾼`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가장 전통적인 파파라치 존재
를 우리 사회에 처음 알렸던 것은 교통위반을 하는 차(car)를 카메라에 포착
해 포상금을 전문적으로 타낸 카파라치였다. 하지만 카파라치는 포상금 지급
제도가 폐지되자 일제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이제는 그 자리를 새로운 신종 파파라치들이 메우고 있다. 예를 들
면 봉파라
치, 넷파라치(저작권법을 위반한 네티즌들을 적발하는 사람들), 과파라치(고
액과외자 적발자), 표파라치, 에파라치, 슈파라치, 노파라치, 주파라치(주가
조작을 고발하는 사람들), 식파라치(식품위생법위반자적발자) 등 수많은 파
파라치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들을 누가 보고 있는
지도 모를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또 포상금과는 관계없이 몰래 카메라가 기승을 부린 지는 이미 오랜 일이
다. 중국 식당 배달원이 배달하는 중에 음식에 침을 뱉는 것도 다 포착해서
공개했다. 그리고 배달하는 과정에서만 아니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만드는 중
에도 음식에 침을 뱉는 장면도 찍어 공개했다. 그리고 또 몰카는 남녀간의
은밀한 행위도 찍어낸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유리로 만든 집에서 살고 있
다. 숨길 수 없이 된 세상에 살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도청을 무서워하고 몰카만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
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
의 말을 듣고 계신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
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
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
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
를 붙드시리이다”라고 말했다(시 139:1-10).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피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히 4:13).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훤히 아셨다(눅 16:15). 그들이 교만한 말을 하
는 것도 다 아셨고 바리새인들의 수군거림도 다 아셨다(마 22:18). 또 그들
이 바다의 풍랑 중에 고생하는 사실도 다 아셨고 멀리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
린 사람의 고통도 아셨으며 이방 가나안 여인의 고통을 알아서 찾아가 주셨
다.
예수님은 우리의 얼굴에 두 색깔을 칠하고 다니는 것도 다 아신다. 이 사람
앞에서는 이 말을 하고 저 사람 앞에서는 저 말을 하는 것도 다 아신다. 예
수님은 주일날에만 우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주중에도 매일 우리를 보신
다. 성도는 혼자 있어도 분명 성도
다워야 한다. 우리는 아무 때 아무 장소에
서든지 예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딤전 6:14; 벧
후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