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가르치는 정치 지도자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벌써 정국은 대권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야당
에서는 이미 두 선두 주자가 당내 경선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여권 역시
대선 후보 중심으로 재편될 조짐이 보인다. 따라서 요즈음은 앞으로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갈 정치 지도력에 대한 논의가 많다. 예수 믿는 사람 역시 대
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람직한 정치 지도자상으로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한
다.
첫째, 비전을 갖는 사람이다. 정치 지도자는 오늘날의 세계정세와 관련하여
한국사회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력과 그 비
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 및 불타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정치 지도
자가 분명한 비전을 갖지 못하면 국가는 혼란의 사막에서 헤맬 수밖에 없
다. 국가의 주요 정책은 정치 지도자의 비전에 바탕을 둘 때 비로소 실효성
이 나타나게 된다.
둘째
, 경륜이 있는 사람이다. 정치 지도자는 국가 비전을 정책으로 구체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이것은 그다지 중요
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다. 선거 때마다 정책 토론을 벌이지만 공약한 정책
을 제대로 지킨 정치인이 지금까지 과연 얼마나 있는가? 그러나 정치 지도자
가 이러한 정책 수행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비전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
것은 한갓 구호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민주적 지도력을 갖춘 사람이다. 정치 지도자는 국민의 뜻을 민주적으
로 통합하여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을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이 필요하다. 오랜 세월동안의
왕정 역사 때문에 한국의 정치 지도자는 국민을 섬기려 하기보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의식을 갖기 쉽다. 하지만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아래에서 국민
의 뜻을 수렴하고 그것을 정책화할 수 있지 않으면 바람직한 정치 지도자라
할 수 없다.
넷째,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가
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양극화 현상이다. 이 현상은 일차적으로 경
제
적 양극화에서 비롯되었다. 정치 지도자는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치유하고
공동체 모두가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제도와 틀을 마련할 수 있어
야 한다.
다섯째,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 정치 지도자는 권력을 잡기 위해
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이것은 오늘
날 한국의 정치 현상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신을 반영한다. 하지만 신뢰
가 없으면 정책이 효율성 있게 추진되어 갈 수 없고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
게 된다.
교회는 사회에 대해 책임이 있는가?
한국교회는 지난 1세기 동안 세계 선교 역사에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이 성장의 기쁨과 더불어 오늘날
한국교회는 한국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선교 초기에는 한국교회
가 사회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오늘날 한국교회는 사회에 대
하여 빛을 던져주지 못하고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한국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대체로 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회
는 단지 복음 전도의 대상일 뿐이다. 이것은 이른바 보수 교단이 믿음 생활
을 개인 구원의 영역에 머무는 것으로 이해한 데서 비롯되었다. 물론 진보주
의 교단에서는 이른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주창하였다. 보수주
의 교단이 개인 구원과 교회 확장이 선교라고 보고 정교분리의 명분아래 현
실 사회의 문제에 대해 침묵한 반면 진보주의는 하나님의 구속 의지의 사회
적 실현에 참여하는 것이 선교라고 보고 인권 문제, 정의로운 분배 등의 사
회 문제에 적극 개입하였다.
그러면 과연 개혁신학이 물려준 전통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가 사회에 대
하여 적극적인 책임을 갖는다는 것이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
계복음화대회’ (ICOWE)는 빈곤, 정치적 민주화 및 인권에 대한 관심을 확인
하였다. 그후 1989년 필리핀에서 세계복음주의자들은 ‘마닐라 선언’을 통
해 ‘총체적 복음을 총체적 세계에 선포할 것을 재확인’했다. 이것은 결코
복음 진리의 변질이 아니라 복음의 상황화이고 사회화의 노력이다.
개혁신학은 성경의 진리를 실제적이고 구체적 삶의 상황에 적용하려는 노력
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결코 구속 질서와 분리될 수 없다. 기독
교강요에서 요한 칼빈은 신앙의 본질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 정의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은 바로 창조자요 구속자이시다. 이것은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동시에 창조의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창조 질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구원의 삶을 이루어 가는 영역이다. 하나님
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취하신 구속은 이 창조 질서를 구속하는 것을 목
표로 한다. 구속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계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주
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창조 질서의 중요한 한 영역인 사회는 교회
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을 구체화하는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