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바른 교회의 가치
<김영규 목사>
-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바른 교회는 국가나 사회의 어떤 구성체들보다 완전하고 뛰어나”
성경은 과학교과서도 아니고 역사 교과서도 아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틀림이 없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도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신구약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히 1:1-4:13).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율법의 일 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하셨고, 마지막 천지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하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적응하시사 우리에게 나타나시며 우리에게 분명하고 충분하게 말씀하셨어도 사실의 진실성은 항상 ‘우리 독자’에게 맡겨둠이 없이 자신 안에 쥐고 계시고 말씀하신 것을 스스로 사실로써 증명하신다.
반면에 우리 주변에 자기가 하나님이고 자신이 다시 올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사회 자체가 구조적으로 거짓을 생산하듯이 그런 자들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고 피해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모든 거짓은 시간 문제이다. 시간이나 공간, 그 안에 근원적 질서들이 있다고 해도 근원적으로 우리의 경우 그 존재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하나님 안에 그 답이 있는 것처럼, 사실 자체도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만물이 동원이 되어 볼 수 있는 눈을 창조하시고, 보고자 하는 마음이나 의지를 우리에게 속한 질서로 두시며, 자연으로부터 온 정보들이 지각들을 통해서 뇌에 이르러 우리가 보는 세계로 혹은 지각하는 세계 안으로 이미 항상 들어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도달하는 ‘본다는 것’ 자체나, 혹은 ‘지각하는 것’ 자체가 물질 세계가 아니고, 우리와 우리 주변으로부터 항상 비약하여 정보의 단위들이 다르게 정보들을 수집하고 또 다른 정보의 단위들로 된 정보들을 생산하면서 마지막 정보 단위들로 그렇게 뿌려주기만 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들의 계속 변환과정만을 밟고 있을 뿐이요 정보 자체들을 발견하거나 보거나 느낄 수 없다.
언어들은 우리의 입가에 사실과의 거리용으로 맴돌다가 밖으로 튀어나올 뿐, 사실들을 담아내기보다는 더 크게 언어들로만 남아 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사실이라고 재생산한 것은 대부분 코끼리가 코의 바람소리로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것과 같다.
그렇게 진실과 언어들 사이에 그렇게 큰 거리가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각활동이나 의식활동이 하려고 하는 것과 함께 지향적이라는 오류에 빠져 있고 그렇게 지향하는 행위들이 판명성에 그 방향이 있다는 것, 궁극적으로 그렇게 오류들이 있는 것도 거꾸로 정보들이 뇌를 향하여 가서 미지의 정보들로 뿌리려는 방향이 있는, 그런 피할 수 없는 인식론적 그리고 과학적 환원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그런 큰 거리의 근원은 처음부터 모든 자연적 질서들을 명령으로 창조하셨다는 그 방식에 있다고 해야 될 것이다. 우선 급하게 그런 큰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모든 언어사용을 금지하고 의식활동을 중지하는 순간에 우리에게 아무런 답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다.
실존주의자들처럼 아무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의 압박 앞에 되돌아 와 언어들을 다시 굴릴 수밖에 없다. 행동을 존재에 선행시켜 의식을 생산하고 언어들을 생산하고자 하는 실존적 행동들, 선 과학적 행동들, 사회적 행동들이 사실이나 진실이 아닌 그런 깊은 거품들의 생산 세계 뒤에 어떤 진실들이나 사실들을 축적한다고 믿는다고 해도 그런 지식들이 성경을 증명하거나 성경을 이해하도록 하는지 묘연하다.
최근에 Science(2014년 8월 8일) 학술잡지의 한 논문에서 천체물리학과 입자물리학이 결합하여 태양계 안의 궤도들이나 우리 은하계 안에서의 어떤 운동들 이전에 지구의 근원상태나 태양의 근원상태가 동시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이런 증명이 창조의 네 번째 날에 새롭게 등장하였다는 광명체들과 별들에 의한 ‘징조들, 정해진 때들, 날들, 해들’에 대한 진실이 지구 중심설, 태양 중심설 등의 인간의 실수들을 거치면서 이제 증명되는 듯하다. 그래도 성경은 과학교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 시대에서 만나는 일상용어들로 표현된 진리들일 뿐이다.
최근 Nature (2014년 9월 4일) 잡지의 한 논문에서도 우리의 은하계와 함께 등속으로 혹은 가속으로 팽창하는 모든 은하계들 혹은 별들이 함께 분포되어 큰 무리(Laniakea supercluster, 160 Mpc, 태양보다 10의 17승 배 크기)를 지어 다른 무리들과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이 되었다.
거기에서 처음 우주의 팽창의 등속이나 가속의 원인에 대해서 풀어 줄만한 어떤 빈 공간이 발견이 되고 있지만, Higgs 입자의 발견과 함께 그것이 ‘공허’의 본질인지는 다시 의혹이 생길 수 있게 되었으며 소위 최초의 중력파라고 주장되고 있는 우주배경복사의 뿌리(B-Mode Polarization Pattern)에 대한 탐구 방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물질세계를 우주의 본질에 있어서 우연히 생긴 찌꺼기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가 존재하는 어느 질서나 순간도 헛된 것이 아닌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우주 창조의 중심 목적에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왜 그런지는 성경 외에 다른 곳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복이나 은혜도 현실적으로 받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그 속성들을 닮아 가는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죄인들로 모여 있는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다 예측하기 어렵다. 적어도 교회가 그런 구원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기본에 있어서 바른 교회는 막대한 특권들을 가진 국가나 사회의 어떤 구성체들보다 완전하고 뛰어나며 그 자체로 존중이 되어야 하고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