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나를 지목하신 이유_안두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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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목하신 이유

 

< 안두익 목사, 동성교회 >

 

우리는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지난 번 제 카카오톡에 재미난 광경을 보낸 교수 한분이 계셨습니다. 물이 가득담긴 물통을 그대로 온몸에 쏟아 붓는 장면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지명을 받은 사람이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 정치인들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 그리고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SNS를 통해서 급속도로 퍼져 나갈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그냥 재미삼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미국 루게릭병협회(ALS)가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 쓰냐면 루게릭병이 어떤 병인지를 조금이라도 알자는 것입니다.

 

이 병은 온몸의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어 점차적으로 호흡근이 마비되어 사망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 루게릭병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이, 마치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순간 온 몸의 근육이 수축되면서 느끼는 고통과 비슷하기 때문에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도록 여러분을 지목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 지목받으실 때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루게릭병 환자를 돕고, 그들의 고통을 느껴보자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를 지목해서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쓰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기분 나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지목해 준 사람이 고마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인정을 받는 것, 정말 보람이 있고, 그것 때문에 자신감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나를 지목하셔서 이처럼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시는 것은 엄청난 은혜요, 복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나 하나를 구원의 자녀로 삼기 위해 이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이 세상 한 복판에 당신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으로 물들고 오염된 나 하나를 건지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뛰어드신 것입니다.

 

자격을 따지지도,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달려와 십자가에서 더럽고 역겨운 냄새로 진동하는 나의 죄를 그대로 끌어안으시고, 희생 제물로 나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그리고 우리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내가 뭔데, 도대체 나란 인간이 뭐길래, 하나님께서 외아들 독생자를 아무 조건 없이 주셨냐는 말입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바울의 고백이 실감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요즘 우리의 목회 현장이 염려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담임으로 30년 가까이 목회한 나에게도 때론 내일이 안 보일 정도로 두려움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목회 현장이 예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지금 조국 한국은 나라를 바르게 섬겨야 할 위정자들이 혼란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금융 사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납니다. 돈이 있어도 은행에 맡길 수 없는 세상, 사랑스러운 내 자녀들을 학교에 맡기기 힘든 세상입니다. 건강한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많아야하는데 실업자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아직도 신용불량자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아직도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세계는 지진과 전쟁, 그리고 기아와 굶주림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사탄이 그저 제철을 만난 듯 미친 듯이 날뛰고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우상들이 판을 치고 있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영적 어두움이 우리를 덮으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마냥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정채봉씨가 쓴 ‘모래알 한 가운데서’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상처를 입은 젊은 독수리들이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기 시험에서 낙방한 독수리, 짝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독수리, 윗 독수리로부터 할큄 당한 독수리.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큼 상처가 심한 독수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죽느니보다 못하다는 데 금방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이때 망루에서 파수를 보던 독수리 중에 영웅이 쏜살같이 내려와서 이들 앞에 섰습니다.

“왜 자살하려고 하느냐?”

“괴로와서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어요.”

영웅 독수리가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가? 상처하나 없을 것 같지? 그러나 이 몸을 봐라. 이건 날기 시험 때 솔가지에 찢겨 생긴 것이고, 이건 윗 독수리한테 당한 자국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 드러난 상처에 불과하다. 마음의 상처자국은 헤아릴 수도 없다.”

영웅 독수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일어나 날자꾸나. 상처 없는 새들이란 이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들이다.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그렇지 않습니까? 날기를 포기하기에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어설프게 한발은 세상에 딛고, 또 한발은 교회에 딛는 어정쩡한 모습을 가지고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 지식이 온 땅에 펼쳐나가리라 생각하십니까?

 

이 결실의 계절에 또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해 한 번 더 주의 은혜 앞에 서십시다. 왜냐하면 주님이 나를 지목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