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으로“라고 말해야 할 이유
오늘날 믿음에 행함을 더하려고 하는 시도는 참된 믿음의 성격을 제대로 보지 못한데서 기인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시적인 믿음, 역사적인 믿음, 이적적인 믿음도 같은 믿음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믿음은 애초에 참된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잘못된 믿음들은 언약의 신실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각기 제 갈 길로 떠나고 말게 된다. 그것은 위로부터 기원한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기원한 자기 신념에 불과한 이념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국교회에 유행하는 값싼 복음, 값싼 은혜, 잘못된 이신칭의 교리 이해에서 비롯된 소위 ‘말로만 믿는 믿음’에 민감한 나머지, 이 문제의 해법을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믿음에서 찾지 않고 이들이 지닌 일종의 신념과 같은 자기 믿음에다가 율법적인 행위를 덧붙임으로써 해결하려고 한다.
‘오직 믿음으로’가 아니라 ‘믿음 더하기 행함(행위)으로’라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다. 게다가 심지어는 믿었지만 신실하게 행하지 않으면 구원에서 탈락될 수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은 그 자체로 무의미해지고 행위만이 남는 순간이다.
하지만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은 오직 영원하신 성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한다. 이 참된 믿음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약속하신 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구속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으시며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신다. 이것이 바로 참된 믿음이 지식(belief)이며 동시에 신뢰(trust)인 이유이다.
그래서 참된 믿음을 소유한 자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죄와 비참을 깨달으며 유일한 위로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에 감사하게 된다. 나아가 그 은혜에 감사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애초에 믿음 자체를 소유한 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은 언제나 행함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단지 그 행함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를 뿐, 참된 믿음을 소유한 신자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에서 행함이 존재하고 있다. 참된 믿음은 인격적인 신뢰이며 실천적 지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코 믿음에서 행함이 분리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