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성탄절의 의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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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성탄절의 의미를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별로 드러나지 않는 평범하고 소박한 한 생명의 
출생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로마 제국의 총독 치하
에서 베들레헴의 한 구유가 주목받을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처럼 세상
은 모두 다 권세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성탄절은 이 세상의 역사가 황제나 제왕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
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준 사건이다. 한 어린 아이의 출생은 인간의 역사
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강림이었다. 모략과 시기가 가득하며, 거짓과 방탕
이 진리를 이기고 있던 세상에 한 줄기 진리의 서광이 비춰온 것이다. 
상업주의적으로 변질된 성탄절의 주인공은 정체불명의 산타 클로스 할아
버지가 되고 말았다. 스칸디나비아 어느 산골에서 나왔다는 정체를 모르는 전
설의 주인공이 성탄절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탄절에 
대한 모독이며, 비역사적인 해석이다. 
현대인들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성탄절은 불행한 인류의 소망이자, 평화와 기쁨을 던져준 하나님의 은혜
를 감사해야 하는 날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겸손을 
배우는 날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 땅에 복음의 빛이 비춰진지 백 이십 여 년이 흘러
갔다. 대립과 음모와 배신이 가득했던 나라에 소망을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었
다. 
이제 우리는 다시 세계를 향해서 그 빛을 던져 주어야 한다. 마약과 우상
숭배와 불의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는 성탄절이 되어
야 한다. 불쌍한 외국 근로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성탄절이 되어야 한다. 
죽음의 절망에서 신음하는 환자들에게, 가난한 절대 빈곤층에게, 낙심한 우리
의 이웃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소망이 주어지는 날이 되어야 한다. 

년말 연시 형식적인 행사들을 개혁하자

해마다 각종 모임과 단체들의 송년모임과 신년 하례가 올해도 여전할 것으
로 예상된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라는 큰 행사를 치르면서 의례적인 모임은 
더욱 더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인간들의 잔치로 
끝나는 모
임들에 대해서 진지한 반성과 개혁을 촉구한다. 
새해 초에도 각 지역 교회를 비롯해서 연합단체나 각종 모임에서나 노회, 총
회, 혹은 전국적인 기독교 단체들 대부분이 낭비와 허례허식이 많은 행사들
을 기획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최근 경향은 화려한 외식을 너무나 자
주 개최하는 것이다. 식사나 접대를 하지 않으면 단체장이나 연합 기관의 대
표가 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천문학적인 식사 비용, 모임을 위한 경비는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아직도 소외된 장애인들과 독거 노인들이 각 곳에 흘러 넘치고 있는데, 일
류 호텔문화에 젖어서 소비 지향적인 외식 파티를 여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아파트 주거자들이 보편화되면서,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 의식
은 사라져 버렸다. 개인주의적이며, 자기 가족중심의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우
리는 이웃의 소중함을 상실해 버렸다. 교회의 각종 모임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도 않고 실용적이지도 않은 선물 잔치로 끝나기가 다반사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인생관은 종말에 대한 기대에서 나온다. 따라서 각자 선
행이나 수고에 대해서 지상에서의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
다. 우리는 하
늘 나라에서 받을 상을 계산하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아야 한
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어떤 예우나, 무슨 남다른 대접을 기대하는 것이 아
니다. 
우리 주님처럼 평범하고 욕심 없이 살다가 훗날에 상급을 받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남들보다 허름하게 입고, 호의호식하지 않도록 하며, 자기를 과시하
거나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중에 칭찬 받는 자가 최종 승리자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