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에게 주어진 명백한 계시의 사실이자 그 내용
이다. 이로써 성도는 부활 신앙을 바탕으로 자신의 본분을 확인하고 날마
다 전진해 나가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 이것이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 회원들을 보면 세상 사람들과 생활의 방식에서 별다른
차이점을 찾아 볼 수 없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관심사는 물론이고 특
별히 구별되어야 할 문화적 관심까지도 대동소이하다. 이것은 성도로서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
미한다. 바로 여기에 부활 신앙에 대한 문제점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생을 유지하기 위
한 방편이나 환경이 특별하게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명백히
구별되어야 하고 그 삶의 실질이 달라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서 사람을
왜 창조하셨는가? 그리고 왜 이 땅에 두셨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
문이다.
삶의 실질에서 구별되어야
일반적으로 인류가 역사를 세워나가고 문화를 건설해 나간다 할지라도 마
침내는 그 끝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인
것이다. 인류가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방지할 목적으로 쌓았던
바벨탑 사건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창11:1-9). 이런 이유
때문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롬12:2)고 바울 사도가 경고하였
던 것이다.
성도라고 하면서 이 세대가 추구하는 일상적인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더불어 협력하고 때론 경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부
활’의 관점에서 본다면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오히려 성도
라면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
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살아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뜻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계시는 곧 그리스도이시
다. ‘여호와’란 성호는 제1위이신 성부께서 이스라엘과 거룩한 언약의
관계를 가지신 하나님
을 의미한다(출3:14). 그런데 제2위 되신 성자는 사람
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시는 가장 충만한 계시라는 인격의 특성을 가지
고 계신다. 이렇게 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알고 포착할 수 있
도록 하셨다.
성육신 이전인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완벽하게 포착할 수 있게 한 표
시가 곧 제2위 성자께서 ‘여호와의 사자’로 보이신 것이다(창16:7, 삿
6:12, 삼하24:16 등). ‘여호와’는 보이지 않지만 ‘여호와의 사자’는 사
람의 눈에 보였고 그의 백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뜻을 가르치시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친히 하나님이신 것을 보이시는 일을
하셨다.
부활은 삶의 최종 목적을 규정한 최고의 계시
그렇다면 성육신 하신 제2위 성자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음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그것은 첫째, 부활의 첫열매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성도들 역시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둘째, 모든 정사와 권세를 부활의 그리스도께서 통일하심으로써 세세토록
성도들도 그와 함께 왕노릇 할 것을 의미한다.
셋째, 자유롭고 신령한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와 같이 성도들도 거룩하고
신령한 몸을 입게 될 것을 의미한다.
끝으로, 이 모든 일이 완성된 뒤에 만유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심으로써 그 영광의 충만함이 가득할 것을 의미한다(고전
15:23-25).
바로 여기에서 부활 신앙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곧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함으로써 새로운 생명, 새로운 영광 가운데
영원히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
경이 요구한다는 이유로 성도로서 그 본분을 망각하고 세속을 따라 산다는
것은 결국 부활 신앙이 그 안에 없음을 의미한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의 역사나 문화가 성도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성도가 이 세상에
서 살아가는 것은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과 신령한 몸으로 부활
하게 될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바로 우리가 그 증인이라는 사실을 마음
에 새기고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