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수정에 대한 기대
한국 장로교회의 헌법은 1917년 미국 북장로교의 헌법
을 한국교회의 실정에 맞게 발췌 번역하여 사용한 것이 그 시작이다. 해방
후 해방된 교회의 현실과 격에 맞게 헌법을 수정하여 사용하였고 1981년 본
개혁교단이 출범함과 함께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헌법으로 수정하여 사
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정하였다 할지라도 그 골격(骨格)은 헌법과 대동소
이하고 아직도 개정(改正)과 수정을 가해야 할 점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각 노회에서 헌법수정을 헌의안으로 총회에 상정(上程)해 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면 헌법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그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전체를 수정할 것인가 부분적으로 수정할 것인가? 아니면 노회
에서 상정해 오는 헌의안과 권징조례의 수정과 헌법적규칙을 삽입할 정도로
수정할 것인가를 결정 내려야 한다. 지금 우리 헌법 중에서 권징조례의 수정
은 시급한 과제이다. 그 용어와 단어를 현대화 하는 일은 필수적 작업이며 문
장의 흐름도 알아보기
쉽도록 수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헌법적규칙이 무엇 때
문에 누락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필요성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유사점이 있어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헌법을 대할 때마
다 느끼는 혼돈은 유사점(類似点)이 많다는 것이며 옛글을 대하는 듯한 감정
을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표준된 해석이 따라야 한다는 점
이다. 사람에 따라서 해석이 다르다는 점은 헌법이 명석하지 못하며 조화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속된 말로 표현한다면 코에 걸면 코거
리 귀에 걸면 귀고리식이다. ‘J.A.하지’의 ‘교회정치 문답조례’가 있어
다소의 도움은 얻지만 사람들 중에는 이를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
면 우리도 헌법에 대한 해설이 출간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암 박윤선 목사가
헌법주석을 내 놓았지만 원리에 멈추어진 내용이다.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
범 한결같이 수정과 보충이 필요하며 헌법적규칙이 보충되어야 하며 헌법 중
정치와 권징조례 등에는 해설서가 출간되어야 한다. 헌법수정 작업은 방대한
작업이다. 지난 3월 15일 헌법수정위원회가 모여 기초위원 몇명을 선
출하고
일을 맡기었다. 졸속을 피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완벽한 헌법이 이루
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법의 응용과 적응에 가급적 일치를 이루도록 힘씀
이 옳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돼지목의 진주목걸이
가 될 것이다. 그리고 법을 운위(云謂)하면 정치목사로 낙인찍는 일은 없어
야 하며, 법을 가지고 농간(弄奸)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법이 하나님의 질서
라면 우리는 힘써 지켜야할 의무를 가진다. 헌법수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명
석하고 조화롭고 권위가 있는 헌법으로 수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갈곳이 없다
근간에 노회의 안수로 목사임직을 받은 신임목사들이 갈 곳(임지)이 없다고
한다. 목사뿐만 아니라 신학생들까지 그렇다고 한다. 물론 목사로 장립을 받
게 될 때 청빙하는 곳이 있어 노회가 목사로 장립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것이 대다수이다. 혹 교회 시무자라 할지라도 장립 후 그 교회를 사임해야
할 형편에 있고 또는 교회기관에서 일하는 자와 심지어는 노회전도부가 임지
가 없어도 전도목사로 안수를 주는 기현상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하여 목
사는 많아졌고 갈 곳이 없는 목사들이 방
황하고 있는 것이다.98년 83총회시
신학교 보고에 의하면 1981-98년까지 18회를 걸쳐 총 1,085명이 졸업했고 이
중 단독목회가 420명 선교사로 60명 유학생이 43명 기타 부목사 전도사로 535
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임지가 없는 목사가 50-100명 안
팎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본교단소속 목사이다. 목사가 갈 곳이 없
다면 이보다 더한 서글픔이 어디 있으랴!갈 곳이 없는 목사문제를 어떻게 해
결할 것인가? 근원적으로 말한다면 신학교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바뀌어져야
한다고 본다. 신학교를 하면 반드시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없이
하고 단순히 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신학교를 찾아 올 수 있는 분위기가 조
성되어야 한다. 목회자로서의 소명은 하나님과 본인과의 문제이다.대교회주의
는 교회의 형평(衡平)이 크게 흔들려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교회안에 크게
부각 되었다. 대교회들의 결단이 촉구되는 바이다. 그것은 교회를 분할(分割)
하는 일이다. 일정지역에 교회를 신설하고 그 지역에 거주하는 신자들로 하여
금 그 교회로 출석하여 섬기도록 하고 교역자를 파송하는 일이다. 교인욕심
버리
고 뜨거운 선교적 사명에 굳게 선다면 가능할 것이며 분할하여 간 교인들
의 자리는 다시 채워질 것이다.근래에 이르러 사회 각분야에서 영적이며 정신
적인 지도자를 찾고 있다. 사회갈등이 조성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정신
적이며 심리적 불안정을 심화해 가고 있다. 이런 부분에 목사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는 것이다. 전문적인 교
양을 받고 목사들이 이런 일에 봉사한다면 목사의 필요는 보다 증가되리라고
본다. “갈 곳이 없다”는 말속엔 “오라는 곳이 없어 못간다”는 의미도 포
함되어 있다. 오라는 곳만 찾아갈 생각을 한다면 평생 갈 곳 없는 사람도 있
을 것이다. 주님은 우리더러 땅끝까지 가라고 하였다. 땅끝까지 찾아간 사도
적 선교신앙이 우리에게 있다면 갈 곳이 없다기보다 오히려 갈 곳이 많을 것
이다. 갈 곳이 없다기보다 갈 곳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을 나의 사역
지로 만들어야 한다. 목숨을 걸고 극한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면 그
곳이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목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