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총회 방문과 동문탐방 <2> 총회 총무 박종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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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총회 방문과 동문탐방 <2>

총회 총무 박종언 목사

애틀란타에 왔다. 박범룡 증경총회장님이 돌아보신 후 2년만이다. 한국에서 
워싱턴은 시차가 13시간, 워싱턴에서 몬타나 2시간, 몬타나에서 LA는 1시
간, LA에서 애틀란타는 3시간차이다. 시차적응은 그저 비행기 안에서 잠을 
청하는 것으로 적당히 적응된 것 같다. 

이곳의 소식은 참 안타깝다. 그동안 목회를 아주 잘하고 있던 분이 장로님
과 의견 차이로 사임을 하고 잠시 한국에 다니러가셨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
런 것이라고 바른 목회를 지향하는 목사님과 목회방침이 다르다는 권세 있
는 장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미국은 기름 값이 매일 조금씩 오르는 것 같다. 하이웨이의 통행량이 확실
히 줄어든 것을 몸으로 느낀다고들 한다. 바쁜 일정과 비싼 기름 값에도 불
구하고 먼 길을 달려오신 동문 목사님들이 반갑다. 오찬을 하며 담소를 나눴
다. 

심호섭 목사와 사모님, 백성봉 목사, 이성구 목사, 김성문 목사의 아들인 
김치성 목사. 심호섭 목사의 성약교회는 애틀란타의 강남지역에 해당된다고 
소개를 받았다. 

그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체육관을 지었는데 자녀들 교육문제로 등록을 미
루던 많은 성도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 가고 있다
는 기쁜 소식이다. 

부목사로 부임한 김치성 목사가 너무 믿음직스럽고 능력 있어서 교회의 거
의 모든 일을 맡긴다며 후배를 돌아보는 심호섭 목사가 정겹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바른 신학을 가지고 바른 교회를 세워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걸림이 되는 일들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PCA 한인동남부노회장으로 심호섭 목사와 서기로 백성봉 목사가 섬기고 있는
데, 바른 신학에 근거한 바른 교회를 세워 가는데 신학은 정립되지 않고 열
심만 있는 장로들이 걸림이 되기도 한다는 말씀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교회에서 문제가 있을 때에 목사들이 당회에 사표를 내는 것은 바른 교회관
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문제라고 공감했다. 주님의 권위로 노회가 목사와 
교회를 회원으로 세우고, 파송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목사가 사역상 문제가 있을 때는 그 목사나 해당 교회는 노회에 보고하고 지
도받아야 한다. 목사와 성도간의 목회적 연고를 설정 또는 해제하는 것은 오
직 노회의 고유한 권한이다. 

이런 정치원리가 지켜질 때에야 주님의 교회에서 사람이 주인 자리에 앉는 
심각한 불행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동소식은 받아보고 있는데 개혁신보는 받아본 적이 없다며 혹시 신문사가 
교단과 분리되었느냐고 묻는 분이 있었다. 아마도 주소가 변경이 되거나 잘
못 입력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개혁신보가 꼭 발송되도록 하겠다고 약속
했다. 

플로리다의 교회에 부임한 김관영 목사, 박노문 목사, 미국의 다른 지역으
로 사역지를 옮긴 동문들의 소식을 들었다.

미주에는 우리교단과 교류가 있는 PCA, KAPC(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와 
PCUSA, KPCA(미주한인장로회)가 있다. 또한 CRC, 미주고신총회와 미주합동총
회 등이 있다. 

그러나 교단에 관계없이 잘하고 있는 교회를 방문하기도 하고 강단교류도 하
면서 열심히 사역을 하고 있는 동문들이 든든했다. 총회장님의 인사를 전하
며 오찬을 대접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진도 찍었지만 아직 사역지를 찾지 못한 이성구 목사
가 계속해서 맘에 걸린다. 세상에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소명을 따라 늦
게 신학을 마친 귀한 주의 종의 길을 형통하게 열어주시기를 기도했다.

워싱턴으로 다시 돌아와서 며칠 숨을 돌리고 필라델피아와 뉴욕의 동문들을 
탐방하고 왔다. 다행이기도 하고 참 안타깝기도 한 일이지만 6월 7일 노스캐
롤라이나 샬롯에서 예정이던 아들의 신학교 졸업식이 며칠 뒤로 연기 됐다. 

결국 나는 졸업식을 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아들 때문에 일
정이 늘어나는 바람에 더 많은 동문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를 올렸다. 중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귀한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와 뉴욕은 딸아이가 휴가를 냈다. 손자 녀석 학교도 결석했다. 비
행기나 기차를 이용하기에는 비용이 더 들고 그 지역 목사님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는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뉴욕지역에서 미주 총회가 있을 때는 뉴욕 공항까지 어린 손주들
을 데리고 혼자 운전해서(400Km 정도) 워싱턴에서 목사님들 마중을 나오기
도 했고, 필라델피아에서 총회가 열렸을 때는 비행기가 마땅히 연결되지 않
아서 워싱턴에서 목사님들을 모시고 올라가기도 했다. 

아직 그리 여유 있게 넉넉한 형편도 아니고 미국 집 치고는 작은 집에 기꺼
이 방을 내주고 친구들 집까지 알선을 해서 목사님들을 편히 모시려고 애를 
쓸 뿐 아니라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을 보고 갈 
수 있기를 원하며 자기 가정을 사용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아무튼 동부지역에서 총회가 있을 때마다 발이 되어주었다. 엄마 아빠를 사
랑해서 같이 있고 싶은 마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성도로서 귀한 목사님
들을 섬기는 헌신으로서는 가능한 일이라면서 웃는 딸의 믿음이 고맙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