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없는 하나님나라 운동을 배격한다

십자가 없는 하나님나라 운동을 배격한다   우리는 종종 불신자들에게 남겨진 ‘일반은총’ 혹은 타락한 이후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남겨두신 ‘잔여물’ 때문에 마치 저들 안에 선한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참된 가치가 있는 것처럼 여기곤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불신자 안에 있는 선한 그것들이 마치 하나님 나라의 가치라고까지 생각...

기독교 교리와 청교도 서적의 중요성

기독교 교리와 청교도 서적의 중요성   최근 교리와 청교도 서적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여파인지 몰라도 ‘교리는 무용한 것인가?’ 또는 ‘신앙 서적, 특히 청교도 서적은 그 당시에만 통용 가능하고 오늘날에는 도움이 안 되는 고루한 것이기만 한가?’ 하는 질문도 높아지고 있다. 잘 아다시피 성경 말씀, 즉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거짓된 체험신앙, 이제는 버려야 할 때

거짓된 체험신앙, 이제는 버려야 할 때   우리 신자들 중에는 소위 체험신앙 또는 신비적 체험신앙을 갈망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사실 종교는 세인들에게 신비적 체험을 제공하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과연 기독교 신앙을 그와 같은 저속한 세속적 체험으로 대신할 수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기독교 신자들 중에는 소위 ‘예언...

신자들이 이땅에서 살아가는 원칙_송영찬 국장

신자들이 이땅에서 살아가는 원칙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우리는 날마다 태양이 떠오르는 경이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 아무도 태양을 하늘에 메달 사람이 없고, 누구도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이 그만큼 경이롭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무리 세상이 경천동지하고 마...

신자들이 이땅에서 살아가는 원칙_송영찬 국장

신자들이 이땅에서 살아가는 원칙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우리는 날마다 태양이 떠오르는 경이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 아무도 태양을 하늘에 메달 사람이 없고, 누구도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이 그만큼 경이롭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무리 세상이 경천동지하고 마치...

무한한 용서와 용서의 한계_황대우 목사

무한한 용서와 용서의 한계   < 황대우 목사, 고신대 교수 >   “신자라면 용서를 비는 일과 용서하는 일에 익숙해야”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다. 그것도 무한한 용서의 종교다. 즉 기독교는 용서를 비는 자에게 용서의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용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언약은 그 자체가 은혜다

언약은 그 자체가 은혜다     우리는 종종 언약을 말할 때 하나님과 인간의 쌍방적 요소를 들어 수평대등한 구조로 착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언약이 언약 당사자간의 쌍방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약은 근원적으로 은혜의 성격을 띤다.   타락 전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셨던 행위언약도 역시 마찬가지다. 행위언약이든 그 이후 인간의 범죄로 맺으...

죽음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

죽음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     바울은 그리스도를 역사적인 사실로 아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의 삶 속에 항상 살아 있는 부활한 주로서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바울이 알고자 하는 ‘능력’은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한 그리스도가 부여받은 능력이었다. 곧 바울은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발휘되는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알고자...

현대 사회의 질병과 교회의 역할

현대 사회의 질병과 교회의 역할   < 김영규 목사 > ·개혁주의성경연구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생활수준 향상으로 높아진 정신질환 퇴치에 교회가 관심 가져야”   오늘날 교회가 이웃을 진정 돕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 중에서 현대사회에서 이...

예배찬송으로서 시편찬송이 주는 유익_최찬영 목사

예배찬송으로서 시편찬송이 주는 유익   < 최찬영 목사, 영국 다윗의교회 >   “진정한 예배의 회복이란 교회가 시편찬송으로 예배하는 것”   우리 교회가 예배 찬송으로 제네바 시편 찬송을 부른지 3년이 되었다. 사실 시편 찬송가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3년 전인 2011년 봄이었다.   같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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