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회 선언문에 대한 제언

0
177

사설

총회 선언문에 대한 제언

 

선언문이란 사전적으로 특정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이에 대한 다짐 및 의지를 표시하는 내용의 문서를 말한다. 특히 공동체의 선언문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되므로 그 작성, 발표와 결의 과정 그리고 추후의 평가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만큼 중차대하여 양날의 검이 된다. 그러므로 대표성을 띤 선언문은 합목적성을 기초로 아주 정밀한 준비와 납득할 만한 공동체적 결의 과정, 그리고 표현과 문장의 정확성을 극도로 요한다.

이번 총회 선언문을 상정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매우 안타까운 이유는 그토록 중요한 선언문을 ‘긴급’이라는 이름으로 급히 내놓은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긴급성’의 공론화 과정이 충분했는지 돌아 봤으면 한다. 그렇게 긴급하고 중요한 것이라면 더더욱 선언문의 제안 이유와 내용들을 먼저 전 노회적으로 검증 받는 일이 필요했다.

총대들이 충분한 시간 속에서 살펴보지 못한 채 열정을 지닌 초안자의 제안과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에 의해 추진된 선언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총회가 촉박한 회의 시간에 긴급동의로 받아 속히 통과시킨 듯 보이는 선언문에 전체가 신뢰와 화합으로 반응하리라 기대하는 건 무리이다. 이는 그 내용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과정상 이미 결점을 배태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언문 7개항을 모두가 긴급하게 여긴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설문 조사나 각 노회에서 이 문제로 의견을 나눈 적이 없다. 사전에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보편 다수의 동의와 납득이 일정한 시간 속에서 무르익어 필연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 선언문을 더 조심스레 준비하고 발표하는 과정이 약하면 이에 동의할 수 없는 회원들에게 상처를 주고 화합의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다. 본래의 의도와 달리 역사적 시행착오와 내외상(內外傷)의 부작용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종교인 과세 문제는 이미 총회나 노회 별로 각종 대책 세미나를 행했고 대부분 나름 준비하여 납부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총회가 긴급동의안으로 “종교인과세는 종교가 정부의 통제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이는 정교분리를 파괴하는 종교자유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에 종교인과세법령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기를 희망한다.”라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총회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역시 긴급동의안을 통하여 “종교인과세법령 헌법소원 심판을 합신총회의 이름으로 발원하고 헌재의 판결이 있기까지 종교인 과세를 보류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제 합신 총회의 각 목사는 총회 결의대로 종교인 과세에 응하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납부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결정은 총회가 긴급동의안 형태로 할 것이 아니라, 대표성을 지닌 이들로 선언문 작성 위원회를 만들어 내용과 자구까지 충분히 연구하고 숙의하여 선언문을 작성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각 노회의 의논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 총회는 현행법을 보류하며 국가를 상대로 헌법소원 심판을 발원할 때는 각 노회의 수의를 거쳐야 하며, 긴급동의한 형태로, 그것도 총회 마지막 날 충분한 토론과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숙고 없이 통과시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또한, 오는 10월 28일 기독교 연합 기관 공동 주최로 정치색을 배제한 ‘신사참배 80년을 회개한다.’는 범교단적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한다. 기왕에 역사적 선언문을 생각했다면 적어도 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우리 총회의 선언문은 과거와 근자의 한국 기독교의 부끄러운 역사들에 대한 통절한 회개와 반성을 표하는 항목 정도는 있었어야 옳다. 한국 사회가 기독교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교회 세습과 목회자의 재정과 성과 권력 등의 일탈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국가를 향한 희망을 선언해야, 선언문을 받아든 국가와 사회도 우리를 존중하며 무게와 예의를 갖추어 반응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1장은 “노회와 총회는 교회에 관한 것이 아니면 어떠한 것도 다루거나 결정해서는 안 된다. 양심의 만족을 위하여 특별한 경우에 겸손한 청원과 조언의 방식이 아닌 한, 국가와 관련한 시민의 문제에 간섭해서는 안 되고, 그것도 정부 관리의 요청이 있을 때이다.”라고 말한다. 제23장은 “정부 관리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신분을 존중하며, 세금과 다른 낼 것을 납부하고, 그들의 합법적 명령에 순종하고,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양심을 위한 국민의 의무이다. … 이런 의무에 있어 교회의 성직자들도 면제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총회는 우리 교단이 받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맞는 선언문이 무엇인지를 차제에 더욱 신중하게 살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