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 고린도후서 11장 28-31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교회의 지도자들이라면 어떻게든 이 교회를 살려보려는 애정 품어야”
마치 교회를 비난하는 일에 경쟁이라도 붙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한국교회를 말하는 사람이면 거의 모두가 조롱에 찬 비아냥거림과 분노에 찬 비난으로 열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사회도 여론도 반기독교 단체들도, 교회 안의 신자도 교회 밖의 불신자도, 심지어 교회의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지도자들까지도 교회에 대한 비난과 가슴 섬뜩한 막말을 쏟아내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마음껏 비난하고 교회는 이제 끝나버렸다는 식으로 속 시원하게 최후 판정을 내리는 것이야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런 상태에 빠진 교회를 아직도 애정을 갖고 어떻게든 치유하며 되살려보려는 것이 어렵지요.
정당한 비평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당한 비평은 사람을 정신 차리게 하고, 사리를 분별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비평에 애정이 달라붙으면 거기서 생명의 싹이 트게 됩니다. 그러나 비난은 비평과는 다릅니다. 비난에는 분노가 자리 잡고 있고, 비평에는 합리적 논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분노에는 감정이 작동하고, 논리에는 이성이 작동합니다. 명의는 진단을 잘 하는 것만이 아니라, 절망적인 환자를 어떻게든 살려내고야 말기 때문에 명의입니다. 의학적으로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살릴 길을 찾아보려고 신음하며 애쓰는 것은 그의 의술 때문이 아닙니다. 망가지고 있는 환자의 생명에 대한 애착심과 책임감 때문입니다.
자신의 치료가 아무런 효험이 없는 환자를 만나면 밥맛도 잠도 없어지고, 그러다가 그냥 그대로 죽여 내보내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과 고통에 한동안 시달린다는 어느 명의의 말을 TV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명의는 의술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에 대한 그의 태도 때문에 된다는 것을 저는 그 때 알았습니다. 생명에 대한 애착이 그의 태도입니다.
최소한 자기 자신을 교회 지도자라고 여기시는 분들만은 제발,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신음하는 이 나라 교회에 대하여 예리하고 탁월한 심판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깊은 애정과 고뇌를 품은 명의가 되어 주십시오. 그래야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명의는 절대로 니코틴 중독으로 말기 폐암에 걸려 온 환자에게 그렇게 담배를 피워댔으니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가 죽어 마땅한 짓을 하여서 그렇게 되었어도, 일단은 살려내기 위하여 전력을 쏟아 붓습니다.
한국교회가 사방으로부터 우겨 쌈을 당하듯이 안팎으로부터 모욕과 공격을 받으며 이렇게 처절한 처지에 이르게 된 절대적인 원인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동안 신자는 신자답지 않게 살아왔고, 교회는 교회답지 않게 살아온 결과입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교회의 지도자들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을 들어도 답할 말이 없고, 무슨 비난과 책임추궁을 받아도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이라면 몰라도 교회 안에 있는 신자와 지도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 교회를 살려보려는 애정을 품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으며, 그러므로 어떻게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를 규명해주고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나셨더라면 우리는 모두 심판 가운데 죽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를 지적하실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우리를 살려내기 위한 대안을 내셨습니다. 그 대안이 바로 대신 죽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어떻게 철저하게 잘못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꾸짖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후에 그 교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고후 11:28-31).
막다른 길로 내몰리고 있는 한국교회 신자들과 신음하는 지도자들에게는 비아냥거림과 비난이 아니라 애정 어린 비평과 고뇌에 찬 대안이 필요합니다. 죽을병에 걸린 것을 알면서도 애착심과 책임감 때문에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덤벼드는 명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