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상| 어느 노부부의 영적 걸음마_이은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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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부부의 영적 걸음마

< 이은국 목사, 용연교회 >  

 

“생명있는 고귀한 영적대화야말로 얼마나 복되고 값진 것인지!”  

 

   주일 저녁나절에는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절대다수 노령층으로 이루어진 농촌교회는 목사의 일을 도울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팔방미인이 따로 없다. 새벽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잠시 쉴 틈조차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까지 치는 기분이다.

   지난 4월 마지막 주일 늦은 오후, 쉼이 절실하고 몹시 지쳐 늘어질 무렵 낯선 의문의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주인공은 수도권의 한 교회에 출석하는 안수집사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영혼구원을 위해 계속 기도해 오던 중 먼저 목사님한테 부탁을 드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분은 오는 주일 어떻게든 강권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낮예배때 참석할 예정인데 일이 잘 되도록 기도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확실하나 아버지까지는 아직은 불확실하기는 하다며 소상히 설명까지 했다.

   이렇게나 흔치않은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 흐릿했던 정신이 순간 맑아지고 번뜻거렸다. 부모님이 누구시냐 물었더니 평소 마을에서 만날 때면 유난히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매년 6월 개최하는 주민초청전도주일에도 꼬박 꼬박 참여해 주신 어르신이라 익히 구면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서울에 사는 우리 작은아들과 며느리도 교회를 다닌다며 슬쩍 귀뜸해 준 것까지도 떠올랐다.

   계속되는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다음 주일 총동원전도주일 행사를 앞두고 있는데 전도대상자를 멀리 고향에 계신 부모님으로 작정했고, 이런 경우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도 적극 환영하고 고향나들이를 흔쾌히 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마침내 한 주가 지나고, 주일아침에 전화가 걸려 왔다. “목사님, 오늘 제가 부모님을 모시고 교회로 가겠습니다. 교회서 만나뵙지요.” 과연 노부부는 자랑스런 아들의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깨끗한 매무새를 하고 마음까지도 고쳐먹고서는 예배자로서의 첫 발걸음이다.

   마을에서 익히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오늘만큼은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출석한 노부부를 대하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또 대부분 또래인 성도들이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아이고 왔능교?” 짧막한 인사 한마디 고작이지만 그 깊이를 결코 헤아리기 쉽지 않으리라. 분명코 새로운 친구가 되었고 주님의 자녀로서의 손을 맞잡으며 서로 반가워했다.

   많은 세월 보내고 이제 주님 앞으로 오게 된 새생명에 대한 기쁨과 축복스런 환영이 배어났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께서 친히 불러주신 것이요 오직 주님께서 예비하신 주님의 자녀입니다! 팔순 노부부의 걸음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첫 번째 출석 후 심방 때는 뜻밖의 진솔한 고백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라서 이런 말 저런 말 다 합니다.” “목사님한테 말씀을 드리고 나니 제 마음이 시원합니다!” “아는 것도 없고 아시다시피 몸이 많이 불편해서 짐지우는 것 같은데 괜챦겠습니까” “이미 승려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이 있고, 저는 마을에 있는 절에 등록이 돼 있구요 올해도 이미 등을 달았는데 괜찮겠습니까?” 자신의 형편과 살아 온 얘기들을 나누며 잠시 머문 것이 두 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적극적 질문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교를 믿는 거 좀 알려주십시오.” “제가 이러려고 (행사때가 아닌 정식교인 되려고)그동안 교회에 다녔던가 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묵은 응어리들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가 보다. 십 수 년 동안을 한 마을에 살면서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란 단순한 인사치레에 불과했으나 이렇듯 생명있는 고귀한 영적대화야말로 얼마나 복되고 값진 것인지!

   6개월 지난 지금 팔순의 노부부는 매주일 어김없이 기다리고 준비한 듯 잘 다듬은 모습으로 목사가 손수 운전하는 승합차에 오르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목사님요, 아들한테 전화를 해서 목사님의 말씀이 귀에 잘 안 들어 오는데 우짜노…” 물었더니 “어머니 이제 겨우 1학년인데 뭘 아시겠어요, 열심히 교회 출석하시면 됩니다”라고 했다며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이제 한식구가 되어 손수 농사지어 거둔 들기름 한 병과 채소 그리고 정성스럽게 잰 고기갈비, 믹스 커피 한 통을 가져오셨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스스로 섬기는 모습을 터득하셨다.

올가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로 열리는 면민체육대회도 함께하기를 권하는 주변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교회를 가야하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며 새로운 관계설정에 따른 갖가지 두려움과 주저함을 말끔하게 극복하고 이른바 자원하여 왕따로 살아갈 각오가 벌써부터 시작된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막내에 대한 화제거리가 멈추지 않는다. “영감님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네요. 얼굴 표정이 달라지고 활기가 넘쳐요. 말씀도 곧잘 하시고, 식사도 잘 하시고… 새사람이 됐네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주님 더 많은 새 생명들을 보내 주시고, 보다 풍성하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