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 장로교회의 몰락이 주는 교훈
미국 장로교 몰락에 있어서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세속주의적 기반의 자유주의 신학이 주는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장로교가 최종적으로 몰락한 시기는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했던 시대였다. 당시 남북 전쟁의 여파로 미국 정신은 한번 더 세속주의로 치닫게 되었다. 이에 편승한 미합중국 장로교는 남북전쟁 이전에 매우 큰 신학적 견해 차이로 갈라진 구학파와 신학파가 전쟁 기간을 거쳐 새롭게 연합을 모색하였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함께 할 수 없듯이 장로교 총회는 다른 신학적 정체성을 가진 집단과 연합할 수 없다. 그러나 미합중국 장로교는 남북전쟁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면서 미합중국 남장로교와 북장로교 총회가 연합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이미 있었던 신학적 쟁점을 뒤로하고 연합한 형태인 혼합주의적 장로교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한 세대가 넘어가기도 전에 미합중국 장로교는 신구약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고 독일에서 발흥하여서 그 시대 신학으로 자리잡은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시대의 보편성 앞에 진리의 보편성이 무너진 것이다. 구 프린스턴의 몰락과 함께 미합중국 장로교 총회는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장로교가 아닌 형태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비참한 상황의 도래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당시 유럽으로부터 다양한 신학적 이론들이 들어올 때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과 세속주의에 물든 신학의 결과물들이 무분별하게 수입되었다. 아직 유럽 신학의 역사를 제대로 분별하여서 헤아리기 어려운 미합중국 장로교는 그 시대에 유행하던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이면서 몰락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장로교회는 계속 분열의 길을 걸어왔다. 195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37차 총회에서 김재준 목사를 파면하고 제명한 일로 말미암아 예장과 기장이 분열되었다. 이후로 고려파의 환원, 예장합동과 통합의 분열 등 크고 작은 분열이 계속되었다. 그 막바지에 우리 교단인 예장합신이 존재하고 있다.
지난 역사를 통해 미국장로교회가 어떻게 변질되었는가를 교훈삼아 우리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보다 확고하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