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정직자들의 모임
< 이은국 목사, 용연교회 >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 들으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
교회도 알고 보니 장삿속이라는 가혹한 말을 건네 왔다. 덧붙여 말하기를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와 다르다는 식의 대꾸는 자신의 주장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아주 대못을 박았다.
최근의 일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문이 아니라 가까이서 허물없이 지내는 불신 친구가 느닷없이 뱉은 말에 일격을 당한 나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구나 하며 흘려버릴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오늘날 세상이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정도가 ‘심각하구나, 어찌할꼬’ 하며 잠시 목회자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멈출 줄 모르고 연일 추락하는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신뢰도를 과연 회복할 수 있을까.
산에서 직접 땔감을 구해야 했던 옛 시절 귀한 땔나무를 구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때는 청솔가지 하나라도 꺾어서는 안될 만큼 엄격하게 산림자원을 보호하던 터라 쉽게 땔감을 구할 수 없었다.
주로 갈비(말라서 땅에 떨어져 쌓인 솔잎) 아니면 가느다란 마른가지 몇 개나 어린 잡목 따위가 전부였다. 어쩌다 썩은 나무 한 그루라도 만나는 날이면 거의 횡재라고 여길 정도였다.
형편이 이렇다보니 마을 사람들은 그 능력자에게로 시선이 모아졌고 요즘말로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매달리기라도 할 때면 그는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크게 헛웃음만 하며 결코 비법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감추어진 모든 것이 드러나는 법,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나무꾼이 한 짓은 반칙과 거짓을 일삼은 것이다. 자신만 아는 곳에다 일찌감치 생나무를 베어 놓았다가 몇 년 후에 그 곳으로 찾아 가 죽은 나무를 가져오는 잘못된 수법인 것으로 드러났다. 양심 바르지 못한 불량적 행위이자 우연을 가장하여 이익을 앞세운 몹쓸 비법이었던 것이다.
정직이라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지키려는 자신과의 싸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정직한 사람이 쉽게 매도되고, 오히려 유연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 공동체의 걸림돌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도덕한 자가 큰소리치고 앞장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나 가질 법한 것이 정직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깊숙이 파고드는 세속화가 교회를 넘나든지 오래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이 혹세무민 거짓을 일삼는 수법을 앞세워 신실한 성도들을 도둑질하는 것을 목표하는 이단에 빠진 사람들까지도 교회를 그 활동무대로 삼아 둥지를 틀 정도가 되었으니, 교회 안에 뿌리 내린 삼허(허수, 허세, 허상)와 같은 온갖 반칙과 거짓을 몰아내고, 지금부터라도 크게 각성하고 일깨워야 할 것이 교회를 정직한 자들의 모임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오래전 개인 사업을 하는 한 분이 예배당을 쉽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 적이 있는데 그 쉬운 방법이란 종교와 단체라는 이름을 앞세워 온갖 편법을 동원하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힘주어 한 그분의 말이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있다. 그런데 “목사님, 교회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불신자가 알고 있는 교회의 성역(聖域)이자 교회만큼은 뭔가 달라야 합니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은 평생 정직하게 행하였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헷 사람 우리아의 일로 인하여 한 가지 과오를 피할 수 없었다. 그 때 크게 실추된 그는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며 정직한 영을 통한 회복을 갈망했다.
지금 나는 무너져 가는 교회의 신뢰성을 세우고 하루가 멀다하며 추락하는 목회자의 신용을 회복하는 마스터키로써의 정직을 강력히 추천한다. 정직한 말씀에 근거하여 정직한 자의 집은 흥할 것이며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교회는 정직한 자들의 모임으로 유지되어야 하겠고,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세상이 우리를 보며 예수 믿기 이전에 양심부터 바로 하라는 말이 더 이상 오르내리지 않도록 정직을 방패로 삼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사람으로서 마땅히 말만 잘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우선 정직한 저울추와 공평한 됫박을 갖도록 힘써야 하겠다.
정직을 기초로 삼는 일이야말로 어떤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보다도 효과적이며 어떤 훌륭한 설교보다도, 어떤 핵심적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도 큰 능력이 된다.
정직성의 회복은 말에 그치지 않는다. 오래 기록돼 남아있을 회의록을 작성할 때는 아주 쪼금이라도 자신한테 유리한 쪽으로 치우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마음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함과 평소 주어진 직무를 소홀히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것 또한 정직의 실천이다.
교회를 정직자들의 모임으로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으로부터 날아드는 숱한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요새를 이루며,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건실하게 하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