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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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한다

 

21세기 디지털 문명은 인류에게 전지적 시점의 모사품을 선물했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의 비극을 생중계로 목격하고, 권력의 심부가 봉인해 왔던 진실의 문서들을 클릭 한 번 으로 마주한다. 그러나 이 눈부신 투명성의 시대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인류에 대한 낙 관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본성의 어두운 심연에 대한 전율이다. 전쟁은 여전히 민간인을 삼키 고, 난민은 국경 앞에서 인간 이전의 존재로 밀려난다. 정의와 인권을 외치던 언어는 자원의 이해관계 앞에서 손쉽게 뒤집히고, 권력은 언제나 가장 연약한 가난의 등가죽을 벗기고 유희 의 도구로 유린한다. 엡스틴 파일이 폭로한 최고의 권력층과 유명인의 조직적 범죄는 인간이 얼마나 깊은 타락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증언이다.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의 재림이다. 권력이 착취의 수단이 되고 이념이 학살의 면죄부가 되는 현실 속 에서, 인간의 가냘픈 존엄은 경제적 효용성 앞에 너무 쉽게 파쇄된다.

이토록 참혹한 현실 앞에서 구약의 가혹해 보이는 심판 기록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기록들에 대해 거북함과 혐오감을 드러낸다. 우리도 이 장면들 앞에만 서면 시선을 돌리고 변증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고 윤리적 완화를 시도한다. 특히 온 인류를 물로 쓸어버린 홍수의 재앙, 아말렉 족속에 대한 멸절 명령, 그리고 원주민을 제거하고 그들 의 종교와 문화를 멸절하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는 현대인의 도덕적 감수성에 심히 거슬린다. 21세기의 인도주의 윤리 기준으로 보면 셋 다 신의 자비가 아니라 폭군의 무절제한 광기로 보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인간 타락의 깊이는 이 기록들이 야만적 유물로 치부될 수 없음을 일깨운다. 게다가 우리가 아는 타락의 깊이는 주님께서 아시 는 타락의 심연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현재의 죄악만 목격하고 행위의 결 과만 관찰한다. 과거와 미래의 전체 해악이나 마음의 깊은 동기와 의도의 전모에 대해서는 무 지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드러난 범죄만이 아니라 권력의 은밀한 방에서 행해진 악의 은폐된 구조, 과거에 축적되어 미래로 이어지는 악의 사슬, 그리고 심장 깊은 곳에 도사린 동기의 전 모도 모두 살피신다.

성경은 우리가 불편할 정도로 정확하게 인간을 해부한다. 노아의 시대에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창6:5). 시인의 고백처 럼, 인생은 통째로 속임수다(시 62:9).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악의 가득함과 항상 악함의 심각성은 상상을 초월하고 지구가 통째로 물에 매장되는 것보다 더 끔찍하다. 이는 선 이 숨 쉴 미세한 틈조차 없는 세계, 악이 세상의 모든 영역과 분야가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는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극단까지 가보지 않아서 죄악의 이런 심각 성에 둔감하다. 현대인이 구약의 심판을 혐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 본성에 대해 낙관적 환상을 여전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이후 서구 문명은 교육과 이성으로 인간이 도덕 적 진보를 이룰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스탈린 의 대숙청,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르완다 대학살로 인해 이 낙관론은 산산이 부서졌다.

성경은 사람의 합의된 사회적 기준에 구석구석 어긋나고 인간이 끝까지 외면하고 싶은 진 실들을 집요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언제나 시대에 불편하다. 그러나 인간의 추한 실상이 베일 을 한 꺼풀씩 벗을수록 인간에 대한 성경의 준엄한 평가가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사실에 고 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나님의 공의는 감춰진 악과 드러난 악, 개인의 죄와 구조의 죄, 현재의 폭력과 미래에 증식될 해악을 동시에 고려한다. 이런 공의가 모든 시대에 불편한 것은 인간의 고질적인 불의를 정확히 타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만물은 조용한데, 인간만 불평한다. 이는 인간이 지상에서 거짓됨과 부패성의 으뜸이기 때문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 한 것은 마음”인데 “누가 능히 이를 알겠는가”(렘 17:9). 이는 인간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시는 분에게만 알려진 인간의 실상이다. 그래서 온 인류에게는 새로운 아담이 필요하다. 이 필요도 그분만이 아시고 실제로 그분이 보내셨다. 온 인류를 짓누르는 죄악의 가공할 무게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에 의해서만 계량되고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