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란 무엇인가: 새로운 도구의 본질
인류의 역사는 도구의 역사였다. 불은 어둠 을 밀어냈고 쟁기는 땅의 완고함을 풀었으며 문 자는 기억의 한계를 넘어 신앙과 약속을 세대 에서 세대로 전수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또한 그 오래된 도구의 계열에 들 어섰다. 인간의 지능과 AI 사이에 성능을 비교하 면 AI가 월등하다. 그러나 AI는 스스로 생각하 지 않고 주어진 데이터를 계산한다. 방대한 데이 터의 바다에서 패턴을 건져 올리고, 확률의 그물 로 단어들을 엮어낸다. 마치 솔로몬의 종들이 오 빌에서 금을 실어 나르듯, AI는 정보의 광산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채굴하여 우리의 기호에 맞 게 다듬어 제공한다.
생성형 AI라 불리는 이 도구는 시인처럼 아름 다운 글도 쓰고 화가처럼 기막힌 그림도 순식간 에 그려낸다. “들의 백합화”를 떠올려 보라고 하 면, AI는 무수한 이미지 속에서 들과 백합과 꽃 잎과 연관된 시각적 요소들을 무수히 조합하여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백합화를 화면에 대령한 다. 그러나 예수님이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 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하셨을 때의 그 깊은 초대, 주님께서 입히시는 영광,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풀까지도 돌보시는 섭리, 그 앞 에서 느껴야 할 경외와 안식, 이런 신비 앞에서 는 기능이 마비된다. AI의 백합화는 빨강과 초 록과 파랑(RGB 값)의 조합에 불과하다. 이해 없 는 재현과 의미 없는 모방의 달인이다. 마치 앵 무새가 “주는 나의 목자”라고 완벽하게 암송해 도 그 고백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것과 일반이 다. 자동 오르간이 “오 놀라운 구세주”를 연주할 수 있어도 구원의 감격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처 럼, AI는 수행하되 깨닫지 못하고, 대답하되 무 심하다.
AI가 인간을 대체할지 모른다는 불안은 종종 본질을 비껴간다. 대체되는 것은 인간의 소명이 아니라 노동의 형식이다. 디지털 세계와 인공지 능 시대에도 우리의 소명은 동일하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아담에게 동산을 맡기시며 “경작하고 (아바드) 지키라(샤마르)”(창 2:15)고 명하셨다. ‘아바드’와 ‘샤마르’는 정원 관리나 농사가 아니 라 창조의 세계 전체를 돌보는 청지기적 소명이 다. AI 또한 두려움과 거부가 아니라 경작과 관 리의 대상이다.
세상에는 인간보다 뛰어난 도구들과 생물들 이 많다. 시력은 독수리가 우리보다 뛰어나고, 청력은 돌고래가 우리보다 뛰어나고, 음색은 꾀 꼬리가 우리보다 뛰어나고, 모발의 밀도는 수달 이 우리보다 뛰어나다. 그리고 계산은 AI가 우 리보다 뛰어나다. 파괴력은 핵무기가 우리의 주 먹보다, 장거리 달리기는 자동차가 우리보다 낫 다. 그러나 분야마다 우리보다 뛰어난 모든 것 들은 순종과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사용과 누림 의 대상이다.
그러나 잘못 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첫 째, 우상화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바벨탑을 쌓던 자들이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 자”고 한 것처럼 AI를 통해 신처럼 되겠다는 교 만을 경계해야 한다. 지혜의 근본은 데이터를 축 적하고 배열하는 게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다. 둘째, 분별의 영이 필요하다. 진실과 거짓 이 뒤섞인 세상의 지식을 먹고 자란 AI는 학습 한 데이터의 편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우리가 신 조나 고백서도 성경으로 분별하는 것처럼, AI의 말도 성경의 잣대로 검증해야 한다. 셋째, 이 도 구의 사용에 있어서는 청지기의 자세로 접근해 야 한다. 다른 모든 만물처럼 AI도 하나님의 나 라와 의를 위해 선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AI 시대는 인간됨의 의미를 더 선명 하게 드러낸다. 과거에는 안아주고, 용서하고, 예 배하는 것이 능력의 범주로 분류되지 않고 일상 의 행위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지금은 최첨단 기 계도 넘보지 못하는 인간만의 고유한 가치와 의 미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AI의 정체성에 대 한 질문은 우리를 더욱 근원적인 물음으로 인도 한다.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누구길래, 주께서 생각 주머니에 종일 두시고 항상 돌보실 까? 신적인 관심사의 기울기를 읽어내야 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하나님의 형상이 복사될 수 없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것은 피조물이 만 든 피조물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 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그 능력, 연약함 속에서도 주를 믿는다고 고백하 는 그 신앙, 절망의 심연도 부활의 소망을 품는 은혜의 거처로 만드는 신비는 오직 인간만이 소 유하고 안다.
한병수 교수
전주대 선교신학대학원, 본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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