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간판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길이 되어야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정체성인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는 이름을 가슴에 새긴
다. 한국교회 대다수가 이 이름을 자부심 있게 사용해 왔으나 진정 그 의미가 교회의 존재 방식과 신앙의 자
세를 규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혁이란 단순히 낡은 간판을 교체하는
일회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비추어 보고 본래의 바른
궤도로 돌아가려는 생명력 있는 영적 여정이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는 ‘이미 개혁된 교회’로서의 역사적 뿌리를 견고히 해야 한다. 500여 년 전 종교개혁은 인간의
전통과 교권의 횡포에 묶여 있던 교회를 다시금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터 위에 세운 거룩한 투쟁이
었다. 우리 합신 총회 역시 1981년, 교권주의의 부패와 비성경적인 질서 속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파수하고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 걸음을 시작했다. 당시 제1회 총회가 아닌 제66회 총회로 출발한 것은 한국 장
로교회의 정통 신학과 역사적 전통을 온전히 계승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처럼 역사적 신조
와 웨스트민스터 신앙표준문서를 보수하며 ‘바른 신학’의 터 위에 서 있는 것은 개혁교회가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 정체성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자랄 수 없듯, 이미 개혁된 신앙의 유산을 지키지 못하는 교회는 더 이
상 개혁교회라 불릴 자격이 없다.
둘째,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 가는 교회’로서 오늘의 과제에 응답해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주의 신
앙의 핵심 가치를 가장 잘 요약하는 표어인 “개혁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secundum verbum Dei)”는 문장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대
한 도전을 던진다. 이 말은 ‘항상 새롭게’라는 유행어가 아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이다. 시대마다
침투하는 인본주의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날마다 말씀의 빛 아래 스스로 점검하고 정화하는 거룩한 갱신
을 뜻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고 비난받으며 영적 침체를 겪는 것은 ‘항상 개혁’되어야 할
과제를 망각한 채 과거의 성취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비추어 보며 세
속 가치로부터 자신을 구별해 내는 영적 민감성을 회복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실천적 책임을 다하는 ‘개혁하는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개혁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적극
적인 실행이다. 성경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고 책망하며 의로 교육한다고 선언한다(딤후 3:16). 따라서
교회는 내부의 잘못과 왜곡을 외면하지 말고, 실제로 이를 고치고 바로잡는 용기를 내야 한다. 이는 예배를
바로 세우고, 성경적 가르침을 회복하며, 책임 있는 권징과 치리를 시행하는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특히
개혁교회 예배의 핵심인 ‘예배의 규정적 원리’를 지키며,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선포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형태로 위장되어 시행되는 목회의 혈연 승계나 금권 선거
와 같은 비성경적 관행을 단호히 거부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심을 삶의 현장에서 증명해 내
야 한다.
넷째, 사회적 이슈 앞에서 공적 선과 도덕법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개혁교회는 세상 속에서 고립
된 섬이 아니다. 우리는 정파적 편들기를 경계하면서도 하나님의 도덕법과 공적 선, 그리고 신앙의 자유라는
원리 위에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낙태, 동성애 등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도전에 대해서는 성경적
가리킴을 분명히 하되, 소외된 이웃을 향한 긍휼과 사회적 정의를 세우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서야 한다.
이것이 개혁된 신앙을 가진 성도가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빛과 소금의 역할이다.
결론적으로, 개혁은 한때의 사건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방식 그 자체여야 한다. 정암 박윤선 목사는 “남을
개혁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외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도전이다. 개혁교회라는 이름이 과거의 유물을 보관하는 박물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미’ 개혁된 신앙의
토대 위에서 ‘날마다’ 말씀으로 개혁되어 가며, ‘실제로’ 자신과 세상을 개혁하는 삼중의 과제를 수행할 때 비
로소 교회는 이 어두운 시대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살아 움직이는 길’이 될 수 있다.
새해, 우리 합신의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 거룩한 개혁의 여정에 동참하기를 촉구한다. 멈춰 선 간판이
되어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자가 아니라, 말씀의 검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
는 신실한 개혁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며, 합신 교단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
유이자 사명이다. 개혁은 멈추지 않는 길이며,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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