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AI 시대의 문턱에서
요즘 나는 예레미야 애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
다. 히브리어 본문은 늘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예
전에 나는 연필로 히브리어 단어들 밑에 선을 긋
고, 동사의 어근을 분석하며, 문법적 뉘앙스를
노트에 적곤 했다. 이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한 절을 번역하는 데 여러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느림 속에서 말씀은 내 영혼에 조용히
스며들었고, 그래서 그 느린 연구마저 즐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AI 도구를 이용해 성경을 연구
한다. 아침마다 깨어나 기도를 마치고 서재로 들
어서면, 책상 위 컴퓨터 화면이 희미한 청백색 빛
을 내뿜는다. 어젯밤 늦게까지 애가 주석 작업을
하다가 그대로 두었는데, 마우스를 움직이자 화
면이 깨어난다. 화면에는 인공지능 언어 모델에
내가 요청했던 히브리어 문법 분석 결과가 정갈
하게 정리되어 나타난다. 애가에 등장하는 동사
들의 성·수·격과 상태가 깔끔한 도표로 분류되어
있다. 손으로 히브리어 사전을 넘기고 문법서를
뒤지며 온종일 걸렸을 작업이 이제는 몇 초 만에
완성된다.
나는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화면을 응시
한다. 경이와 불편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이 기계
는 무엇인가? 단순히 계산기가 진화한 신형일 뿐
인가, 아니면 인간의 사고를 흉내 내는 전혀 다른
존재인가? 화면에 놓인 결과물은 생각의 산물인
가, 계산의 귀결인가? 더 중요한 질문이 뒤따른
다. 목회자요, 신학자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나는 이 도구를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
해야 하는가?
이것은 기술적인 질문이 아니라 신학적·윤리적·
실존적 질문이다. 어떤 목회자는 AI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긴다. “기계가 설교를 대신하면 어떻
게 하느냐”는 우려 때문이다. 어떤 목회자는 열
광한다. “이제는 더 효율적인 사역이 가능할 것”
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또 어떤 목회자는 무심하
다. “나는 아날로그 인간이니 기술의 변화는 남
의 일”이라는 무관심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피
상적인 반응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깊은
신학적 성찰이다.
창밖으로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밀려온다. 언
제나 그렇듯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신비롭다. 창
세기 1장 첫 구절이 떠오른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리고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의 첫 말씀도 떠오른다. 말씀이 있었고 빛
이 있었으며, 질서가 혼돈을 이겼고, 의미가 무
의미를 몰아냈다. 그 빛 아래에서 모든 피조물은
제자리를 차지한다.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해
와 달,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은 각각 하나님
이 정하신 영역과 기능을 간직하고 있다. 해는 밤
을 넘보지 않고, 물고기는 하늘을 탐하지 않으
며, 나무는 남의 땅을 탐하지 않고 한 자리를 지
킨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감당할 때
창조는 조화롭다.
나 역시 AI에게도 자기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
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범주는 아니다. 인간은 늘 도구를 만들어 살아
왔다. 돌도끼 제작에서 증기기관의 발명을 거쳐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연대기는 앞으로도
놀라운 변신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각 시대는
그 시대의 도구 앞에서 잠시 당황하고 두려워하
다가 결국 적응해 왔다. 활자 인쇄기가 등장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이제 아무나 성경을 읽어 이
단이 생긴다”고 걱정했다. 전화기가 나왔을 때도
“목소리만 오가면 사회적 관계가 깨진다”고 우려
했다. 그러나 인쇄기는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
고, 전화기는 고립된 사람들을 연결했다. 도구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
도 쓰이는 중립적인 문명의 도구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포도, 맹목적인 낙관
도 아닌 분별이다. 그리고 분별은 지혜에서 나오
며, 지혜는 계시에서 온다. 물론 AI에 대한 직접
적인 언급은 성경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도구에
대해, 인간의 창조성에 대해, 하나님의 형상에 대
해, 문화 명령에 대해 분명히 증언한다. 이 변하
지 않는 진리를 급변하는 오늘의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는 일, 그것이 바로 신학의 책임이다.
오늘도 나는 AI를 사용해 성경을 연구한다. 그
러나 결코 그것을 섬기지는 않을 것이다. 도구는
도구로 머물러야 하고, 예배는 오직 주님께만 드
려져야 한다. 이것이 내가 도달한 답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답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태
초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것이 시작된 그곳, 하
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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