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세권 목사 강원노회 온유한교회
엘리야 선지자는 한때 인간적인 판단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갈멜산에서의 승리 이후에도 아합과 이세벨의 핍박을 피해 도망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이스라엘의 완고한 불신앙과 더딘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깊은 낙담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대가 아무리 어두워져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의 남은 자를 남겨 두시 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가게 하십니다. 심판 가운데서도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의 강한 불만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 다. 그는 어느새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계획을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것과 의도적으로 거부한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주관에 억지로 끌어 맞추려는 순간, 실패는 이미 시작됩 니다. 이것이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할 부패성 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대로만” 순종하면 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그것을 듣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는 데 있지 않습니 다. 사람들이 끝까지 믿음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역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리가 여기에 있습 니다. 엘리야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한다고 여겼고, 일이 자신의 기대대로 진행되지 않자 깊은 좌절에 빠졌습 니다. 그러나 그는 호렙산에서 다시 하나님의 구속사를 확인하며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회복하게 됩니다.
세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타락해 가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엘리야와 같은 사람들이 더욱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엘리 야는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의 거대한 바알의 흐름 앞에서 타협하지 않고 담대히 맞서 싸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엘리야의 심정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요? 그것은 하나님의 일의 참된 성공과 그기준을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섬길때 그 결과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며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과정 그 자체가 가치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외형이 성공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자유가 행사되지 않을 때에도 자유인 것처럼, 실패처럼 보이는 순간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성공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혹자는 합신의 색채로는 부흥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근거 없는 말에 낙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시대는 엘리야처럼 남은 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역자와 성도들을 더 필요로 합니다. 우리 합신은 이런 남은 자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시작한 총회입니다. 세속화된 한국 교회를 보며 절망하기보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때입니다. 신학교에 신입생들이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복음을 대하는 태도와 아름다운 전통, 그리고 축적된 역량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올해에도 끝까지 이 길을 명예롭게 잘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 합신에 게는 이 옷이 잘 맞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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