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과 문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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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문화를 통해 즐거움을 얻으려는 근본적 욕구가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 행사를 마련해서 이 욕구를 충족시킨다. 문화적 즐거움을 찾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첫 사람 아담에게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허락하신 것은 눈의 즐거움과 입의 즐거움을 선사하신 것을 의미한다. 창조 질서 안에 머무는 쾌락은 선하다. 그런데 창조 질서를 떠난 나쁜 쾌락도 있다.

하나님을 떠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르며 타락으로 끝나는 파괴적인 쾌락도 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결실을 막는 가시떨기를 염려와 재물과 향락이라고 설명하면서(눅 8:14) 쾌락을 맨 끝에 둔것은 이런 뜻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가 나쁜 것만은 아니기에 교회는 그것을 선도해야 할 사명이 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인 교회는 세상에 들어가서 세상과 만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상과 단절되면, 교회는그 사명 가운데 중요한 하나를 상실하는 것이 된다. 문화 활용이 복음 전파의 유일한 방도는 아니지 만, 큰 효과를 낸다는 것을 부인할 길이 없다. 교회는 처음부터 알게 모르게 문화적으로 세상과 만나 려는 노력을 해왔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는 성경을 필사할 때 유구한 역사 동안 사용되던 두루마리 형태를 지양하고 오늘날 흔히 보는 책(코덱스) 형태를 전격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채택하였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성경에 더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화를 선도한 것이다.

19세기 말 복음이 우리 땅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서구의 기독교 문화도 따라 들어와 복음 전도에 일조하였다. 그 가운데 성탄절 문화도 있다. 크리스마스 나무를 세우고 형형색색 전구를 달아 장식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로 인사하고 캐럴을 부르며, 서로 선물을 교환한다.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거나, 이웃돕기 냄비에 크고 작은 성금을 넣는다. 성탄 행사를 열어 성탄 연극이나 문학 발표회를 하고 칸타 타를 합창하기도 한다. 새벽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교우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성탄 축하 노래를 부른다. 모두 다는 아니지만 이러한 성탄절 문화 가운데는 몽환적이거나 동화적인 요소도 있고, 어떤 것은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이런 행사들은 생활이 단순하던 시기 문화적 욕구를 채우는 데 필요했던 문화적 장치였다. 복음 전파의 일환이 되었다는 점에서 성탄절 문화 가운데 수용될 수있는 것들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성탄절 문화는 여러 면에서 맹렬한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는 이방 종교의 태양신 숭배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성탄 장식이 신앙의 형식화를 조장한 다거나, 선물 교환은 기독교를 값싼 상업주의에 영합시킨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문학과 예능 행사들이 세속주의와 맞물려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이러한 날카로운 비판 중 어떤 것은 옳은 지적처럼 보인다. 분명 그 동기는 불량한 세간을 들어내고 집 안을 청소하자는 것이다. 이런 비판 앞에 이전의 성탄절 문화를 계속 고집하는 것은 반지성적이거나 신학에 무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두려웠던 때문인지 성탄절 문화는 점차 시들어가고 약화되어 갔다. 불빛은 꺼지고, 노래는 사라지고, 모임도 줄어들었다.

교회에서 성탄절 문화를 소홀히 한 결과는 무시무시하다.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길을 세상에 내준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훨씬 나쁜 방식으로 쾌락을 제공하는 문화적 장치들을 다량 생산해 냈다. 밸런타인데이, 핼러윈데이, 코스프레 놀이, 퀴어 집회 등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와 쾌락을 만족시키는 행사들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에 지배적인 것은 애정, 주술, 환상, 성적 왜곡 같은 것들이다. 어떤 것은 애교로 넘길 수 있겠지만 어떤 것은 혐오스럽고, 어떤 것은 영적으로 매우 악하 다. 성탄절 문화가 사라진 자리에 세속 문화가 득세하고 있다. 마치 청소되고 수리된 집에 더 나쁜 악귀 일곱이 거주하게 된 모양새다(눅 11:26).

교회는 문화 전쟁에서 실패했다. 과거의 성탄절 문화를 비판한 것으로 그치고, 건전한 기독교 문화를 세우는 일을 소홀히 했고, 그 사이 세속 문화가 피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문화 전쟁에 실패한 교회에는 어린이가 줄어들고, 청소년은 외면하고, 청년들은 떠나갔다. 세속 문화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 들을 문화라는 매체를 통해 복음에 접목하기 위해 교회는 지금이라도 선한 의미의 성탄절 문화를 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