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든 싸움
“희망찬 새해”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지금 국내외 정세를 고려할 때 새해에는 잘 어울리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좌우의 격한 대립이 걷잡을 수 없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밖으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뾰족한 해법 없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만 떼어놓고 보더라도 물가가 날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면서 한동안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지 않는 것은 월급뿐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며 한숨을 내쉰다. 새해에는 사회의 모든 분야가 싸움터를 방불케 할 것 같다는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신자도 새해를 맞이하면서 일상생활 가운데 만만치 않은 싸움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신자의 싸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여러 가지 사안과 관련해서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씨름에 빠져든다. 우리는 아담처럼 하나님 앞에 아무 설득력 없는 변명을 늘어놓거나, 가인처럼 하나님께 불만을 터뜨리는 까닭에 몹시 분을 내며 얼굴을 땅으로 떨구고 안색이 변한다. 우리는 엘리야처럼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면서 생명을 거두어달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떼를 쓰거나, 요나처럼 하나님의 뜻에 항의하며 성을 낼 뿐 아니라 아예 옹고집을 피우며 거역하고 탈선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의 씨름은 사실상 매우 쉽다. 하나님께 그냥 항복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자하신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얍복 나루에서 야곱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이기시고도 도리어 우리가 하나님을 이겼다고 하시며 우리 손을 들어주신다.
신자에게 이보다 어려운 싸움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벌어진다. 특히 갈등을 빚고 있는 사람과의 싸움이다. 감정이 맞지 않고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소통 불가능한 사람,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헐뜯고 조롱하는 뒷담화를 일삼는 사람, 심지어 면전에서 모독을 가하여 인격에 심각한 상처를 입히는 사람, 도저히 한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없는 이런 사람들과 우리는 자주 힘든 싸움에 말려든다. 그래도 이런 싸움에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을 사랑하거나 피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그런 사람까지도 사랑하거나, 그럴 자신이 전혀 없으면 그런 사람을 더 이상 만나지 않도록 피하면 된다.
신자에게 가장 힘든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인간은 수많은 욕구를 가지고 산다. 혀를 즐기고 배를 채우려는 식욕, 손아귀에 움켜쥐고 주머니를 부풀리려는 물욕, 이성에 대하여 느끼는 성적인 정욕이 욕구의 기본이다. 또한 일이든 자녀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과시욕, 자기 잇속만 채우거나 자기의 힘을 펼쳐 남을 억누르려는 야욕, 지구의 한 모퉁이에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어 안달하는 명예욕이 욕구의 확장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 지음 받은 신자는 당연히 기본적인 욕구와 확장된 욕구의 종이 되지 않아야 한다. 신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자신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자신이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신자도 급격하게 세속화된다. 온갖 구실과 변명을 들이대며 세속적 욕구를 정당화하면서 나쁜 과거로 회귀하여 시체처럼 썩는 부패한 사람 냄새를 풍긴다. 하나님의 목적보다 자기 목적을 이루는 데 혈안이 된다. 최연소에 장(長)이 되었다느니 최고령인데도 장(長)이 되었다느니 우쭐거리면서 자기를 추켜세우는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아끼지 않는다. 이권과 이득을 얻겠다며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추태를 마지막까지 부린다. 역사의 한 줄에 알량한 제 이름을 남겨보겠다며 이를 악물고 덤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공언한 사도 바울마저도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킨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과의 싸움은 가장 힘든 싸움이다. 새해에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중대한 과제로 삼길 소망한다. 이 싸움을 가볍게 여기는 자에게는 역사의 낙인이 찍힐 것이며, 역사가 잊어버릴지라도 하나님은 기억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