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차 프랑스위그노연구소 정례회 참관기_류성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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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차 프랑스위그노연구소 정례회 참관기

류성민 박사(프랑스위그노연구소 연구교수)

 

2024년 8월 12일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4층 강당에서 제10차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정례회가 열렸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60명이 넘는 분들이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고, 연구소 소장인 조병수 박사는 “잠 못 이루는 파리의 밤”(Nuit blanche à Paris)이라는 주제로 열정적인 강의를 펼쳤다.

우리는 이 강의를 통해 이제 막 올림픽을 마친 파리의 도심을 여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500년 가까이 숨겨져 있는 위그노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유인물로 제공된 파리 지도를 중심으로 우리는 16세기 발루와 왕조, 17~18세기 부르봉 왕조, 19세기 혁명 이후의 흔적을 역사적 순서로 추적했다. 발루와 왕조의 프랑수아 1세의 프랑스 대학 설립과 부데의 초빙, 왕녀들의 개혁 의지와 데타플을 비롯한 인문주의자들의 활동, 이들과 연결된 개혁자들의 등장, 1523년 노르트담 광장에서 벌어진 종교개혁 최초의 순교, 이어진 핍박과 순교들, 1533년 콥 사건으로 인한 깔방의 피신과 그 의미, 1534년 벽보 사건과 공식적 핍박의 시작이 해설되었다. 앙리 2세의 치하에서 첫 위그노 교회의 설립, 1557년 생쟈크 거리 사건, 1559년 프랑스 개혁교회의 초대 총회와 앙리 2세의 화형의 방 재개와 화형들, 앙리 2세의 사고와 사망, 그에 관련된 위그노들이 소개되었다. 샤를르 9세의 치하에서 개신교의 상황과 갈등, 도예가 빨리시, 조각가 구종, 가스틴 십자가 사건, 비극적인 1572년 바뗄레미 대학살, 중심인물이었던 꼴리뉘, 대적자 앙리 기즈. 부르봉 시대, 앙리 4세의 전쟁과 개종, 낭트칙령과 신교 묘지들, 신교 예배당들과 각 분야의 위그노 전문가들이 소개되었다. 루이 13세에서 상황이 반전되어 가톨릭을 전적으로 지지했고, 루이 14세 치하에서 위그노 박멸을 위한 시도들, 퐁뗀블로 칙령, 위그노의 투옥과 핍박과 종교적, 사회적 활동, 혁명 이후 위그노에게 허용된 예배의 자유와 현대에 대한 내용을 설명했다.

모든 강의는 조 박사가 직접 파리 현지를 방문하여 탐방하고 촬영한 사진을 기초로 상세하며 생생한 설명으로 이루어졌다. 파리 시민들도 알지 못하는, 현재 위그노들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그렇지만 역사적이며 소중한 기억들이 그의 강의를 통해 드러났다. 특히 글이 담을 수 없는 현장의 분위기와 함축된 의미를 밝혀주는 명쾌한 강의는 프랑스 위그노의 신학과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신앙적 도전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조 박사는 프랑스 위그노의 신학자와 목회자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일관되게 일반 성도들의 삶과 신앙적 활동을 소개했다. 인문주의 학자 부데, 그레브 광장에서 화형당한 학자 베르껑, 시편 찬송을 출판한 궁정시인 마로, 인쇄업자 구디멜, 인쇄업자 에스띠앙, 비스콩티 거리에 거주하던 유명한 위그노들, 생자크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되어 체포, 투옥, 순교한 귀족 부인들, 앙리 2세의 근위대장 몽고메리, 외과의사 빠레, 도예가 빨리시, 조각가 구종, 조각가 프리어, 나바르 여왕 잔 달브레, 제독 꼴리뉘, 앙리 4세, 그의 재상 술리, 양탄자 산업의 고벨랭 가문, 건축가 뒤 세르꼬 가문, 농업가 세레, 과학자 드 코, 개신교 예배에 참여한 이유로 투옥되고, 사망한 수많은 사람들, 위그노들의 피난에 도움을 준 각국의 대사관들이 소개됐다. 이들은 목사도 신학자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자기 삶의 현장에서 신앙을 지키고자 소망한 순전한 성도였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 박사의 표현대로 위그노 운동은 소위 ‘평신도 운동’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위그노의 흔적들이 알려주는 것은 위그노 교회가 목사와 신학자만이 중심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위그노 교회의 중심에는 성도들이 있었다. 이렇게 개혁파 교회에 속한 교인들의 삶은 그 자체에서 진실한 성도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었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파리, 그리고 그 이면에 파리가 그 이름을 얻도록 역동적으로 활동했던 위그노들이 있었다. 그들은 온갖 핍박과 혹독한 박해 가운데 신앙을 지키고, 자신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참여한 그 시대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위그노들은 자신의 개혁신앙을 일상생활에서 누구보다 더 확실하게, 용기 있게 드러내는 뛰어난 예가 되었다.

위그노들의 담대하고, 용감하며, 뛰어난 신앙과 현실의 삶의 모습들은 21세기 한국 교회의 교인인 우리에게 엄청난 도전과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례회를 마치고 나서 답례품으로 증정된 에코백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위그노를 상징하는 십자가, 고난을 상징하는 모루, 마리 뒤랭의 감옥과 “저항하라” 문구 등으로 구성된 그림이 새겨져 있으며, 더하여 실용적 기능까지 첨가된 에코백은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의 정례회가 가진 교회를 위한 실용적 목적과 의미를 잘 보여주었고, 2025년 2월 20일에 열릴 다음 정례회를 더욱 기대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