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 박윤선 목사와의 만남 4] 방지일 목사가 기억하는 박윤선 목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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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일 목사가 기억하는 박윤선 목사(4)

 

그거야 선생님이 더 잘 아시지요

그때는 박윤선 목사, 김진흥 목사가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가기로 했고 나도 웨스터민스터에 가려고 지원서를 다 썼습니다. 그런데 윤선이랑 진흥이는 보증을 못 얻는 겁니다. 진흥이는 뒤에 도움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목사였고, 또 할아버지도 믿었으니까 여러 대가 믿은 겁니다. 그래서 난 웬만한 장로들은 다 알았습니다. 내가 목사 아들이고 또 할아버지가 교회에 열심이 있으니까 내가 신의주에 가서 돈 있는 장로들한테 한 달에 몇 백 불씩 보내는 보증을 서게 했습니다. 내가 윤선이 보증이나 진흥이 보증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여권은 얻었지만 비자를 만들려면 미국 대사관으로 가야 했습니다. 비자 얻으러 갔는데 밤차 타고 서울에 오니까 새벽이었습니다. 새벽에 여관에 들어갈 수도 없고, 신촌에서 내려오니까 거기 구세군 본영회관이 있었답니다. 거기 가서 아침까지 기도하다가 밖에 나와서 호떡 5전짜리 하나 사 먹고서 대사관에 갔습니다. 가서 서류를 내니까 그 대사관 직원이 묻는 말이 이 사람이 매달 이렇게 돈을 보내겠느냐는 겁니다. 그랬더니 박윤선이 평소 잘 웃는 웃음처럼, 씩 웃으면서 “그야 선생님이 더 잘 아시지요” 딱 이랬답니다. 그랬더니 오케이가 된 겁니다.

이 이야기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저 솔직하니까 된 겁니다. “보냅니다” 하면 그 사람들도 돈을 안 보내 줄 줄 뻔히 아니까 거짓말이 되는 것이고, “안 보냅니다” 하면 그 서류가 가짜로 그 자리에서 판명이 날 테니 아무렇게나 해도 걸리는 겁니다. 그런데 윤선이는 씩 웃으면서 “더 잘 아시지 않아요?” 하니까 당장에 허락이 떨어진 겁니다. 그렇게 윤선이도 가고 나도 가고 우리 셋이다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에서 우리 아버지를 상해 임시정부 있는 곳으로 보낸 겁니다. 우리 아버지(방효원 목사)는 성품이 좋은 분입니다. 전국에서 목사가 여럿이 갔어도 다 못 버텼답니다.

상해 임시정부면 다 저만큼 잘난 사람들 모인 곳 아닙니까? 그래서 목사가 거기서 견디지 못하고 자꾸 그만두니까 방효원 목사 보내라고 한 겁니다. 외지 선교사를 내지 전도 목사로 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선교지에 목사가 없이 몇 해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대학 졸업생들을 보낸다고 여러 사람을 천거했는데 다 안 된다고 한 겁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자기들이 다 작정해 놓고 아무래도 방지일이 가는 게 좋겠다고 하고 나한테 연락한 겁니다. 난 그전부터 전도가 목적이었습니다. 신학교에도 교수하려고 간 게 아니라 전도하려고 간 겁니다. 그래서 나는 중국에 갈 테니 너희들만 가라고 해서 그렇게 둘 다 미국으로 보내고 나는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된 겁니다.

* 영음사의 허락을 얻어 도서 <박윤선과의 만남>의 내용들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