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죽음에 관하여-팀 켈러를 추모하며_고상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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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하여-팀 켈러를 추모하며

고상섭 목사(그 사랑교회, 본보 논설위원)

 

2023년 5월 19일 팀 켈러 목사가 향년 7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아들 마이클 켈러는 페이스 북에서 팀 켈러의 유언을 알려주었다. “하나님께서 제가 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저를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해주시옵소서”(I’m thankful for the time God has given me, but I’m ready to see Jesus. I can’t wait to see Jesus. Send me home)

<하나님의 사람, 팀 켈러>를 쓴 팀 켈러 전기의 작가인 콜린 핸슨은 팀 켈러는 암과 싸우는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려고 애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암과 싸우는 게 아니라 내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또한 부활의 소망을 기뻐하는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고자 애쓰면서 17세기 신학자인 존 오웬이 죽음을 앞두고 쓴 <그리스도의 영광>을 통해 죽음을 준비했다고 말한다.

죽음 앞에서도 팀 켈러는 복음이 어떻게 죽음을 극복하는가를 말 뿐 아니라 삶으로 보여준 모델이었다.

그를 삶을 추모하며 그가 남긴 책
<죽음에 관하여>를 통해 팀 켈러가 어떻게 죽음을 준비했는지 그리고 남아 있는 우리는 그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추모하고자 한다.

팀 켈러는 현대인이 옛 선조들보다 죽음에 대해 아무런 대비를 하고 있지 않다고 평가한다. 과거의 사람들은 죽음을 가까이서 보았다. 가족중 몇 명이 태어나서 빨리 죽기도 했고, 누군가의 죽음과 시체를 눈으로 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의학과 과학 덕에 조기 사망률이 낮아졌고, 병원과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서 성인이 되도록 한 사람의 죽음도 지켜보지 못하는 일이 당연해졌다. 아툴 가완디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죽음의 불가피성을 부정하며 산다.”고 지적했다.

성경은 죽음을 통해 인간 삶의 한계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며, 죽음을 부정하는 것은 우매자의 삶이라 경고한다(전도서 7:4). 팀 켈러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피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영적 후자극제 (의식을 잃은 사람을 냄새로 깨어나게 하는 약)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은 우리를 흔들어 깨워 이 생이 영원하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제외하고는 이생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해준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지만 하나님의 사랑만은 우리를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그 사랑은 우리와 함께 죽음 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통과해 우리를 그 분의 품에 안기게 한다. 당신이 잃을 수 없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다. 우리를 품어 주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늘 극도로 불안할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고난과 죽음을 통과해 우리 구원의 ‘창시자’(히브리서 2:10)가 되셨다고 말한다. 헬라어 원어로는 ‘아르케고스’다. 어근인 ‘아르코’는 ‘시작하다’ 라는 의미가 있다. 헬라 철학자들이 만물의 시작과 근원을 말하는 단어로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말에도 ‘제일’ 이라는 말은 첫 번째 라는 말도 되지만 최강, 최고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 말하는 ‘창시자’도 ‘승리자’ 또는 ‘챔피언’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이다.

챔피언은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는 사람이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울 때도 단순한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자국 군대의 챔피언으로 출전했고 대표로 싸운 것이다. 다윗의 승리를 전 이스라엘의 승리이다. 챔피언이 이기면 다른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챔피언이 되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출전하여 승리하신 것이다.(히브리서 2:14–15)

히브리서 2:14절에는 예수님이 죽음의 세력을 멸하셨다고 했다.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으로 죽음의 세력을 멸망시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는 장래에 부활하리라는 소망을 함께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위대한 대장이시자 챔피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물리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에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라고 조롱했다. 히브리 사람들은 사망이 쏘는 화살에 맞으면 사람이 죽는다고 보았다. 바울의 말을 다시 풀어서 설명하면 “죽음아 나를 죽여보아라, 나는 죽어도 사는 부활의 생명을 가진 존재이다. 너는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 나는 그리스도로 인해 죽음을 정복했노라” 외치는 것이다.

“신자는 죽든 살든 결과와 무관하게 늘 죽음을 이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기에 이제 죽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를 지금까지보다도 더 행복하고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 뿐이다.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여 당신의 살아계신 구주가 되셨을진대 죽음이 당신에게 무엇을 어찌하겠는가?”

팀 켈러는 그의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죽음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챔피언 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승리했음을 그의 유언을 통해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있다.

“저는 이제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저를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해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성경은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아야”한다고 말한다.(데살로니가전서 4:13) 이것은 이중부정이므로 실제로는 “소망을 품고 슬퍼하라”는 말이다. 우리의 철천지원수인 죽음 앞에 극도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팀 켈러가 말하는 ‘균형’이란 먼저,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슬퍼하지 않는 것이 신앙적이라고 말하는 한 쪽 극단을 거부하라는 것이고. 또한 극도의 슬픔으로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즉,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신자라도 마땅히 슬퍼해야 하지만, 그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슴 깊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지만 동시에 소망이 공존할 수 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요 11:35) 또한 죽음을 슬퍼하고 분노하셨다.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도록 지음받았지만 죄가 들어오면서 죽음이 침투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창조세계를 무참히 일그러뜨렸다.

오늘날 세속적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죽음은 당연한 것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죽음은 잘못된 침입자이다. 그래서 아무리 죽음 앞에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해도 모든 사람은 죽음이 두렵고 낯설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잠시 후에 나사로를 살릴 것이지만, 슬퍼하시고 분노하셨다. 그리고 죽음 앞에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상태를 가슴아파하셨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 결국 죽음을 정복하셨다.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기에, 이제 우리도 장차 그분의 부활에 동참할 수 있다. 그 소망이 우리의 슬픔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품도록 인도한다.

팀 켈러의 아내 캐시 켈러는 천국을 사모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영광은 기념품을 사지 않아도 되어서 좋아요” 이 말은 위대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장차 직업 뵙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행복은 사실 새 하늘과 새 땅의 예고편과 맛보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팀 켈러의 죽음 앞에서, 우리 또한 그의 가르침대로 슬퍼하지만 소망을 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천국을 사모하며 살 때 이 땅에서 천국의 예고편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한 가르침을 기억하며 영원한 나라의 그림자로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