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 2022년 한 해를 보내며
신규철 장로(송월교회, 시인)
미안합니다
지난 봄 지천이던 산벚꽃 숲에
송홧가루 달빛처럼 날리고
밤새 슬피 우는 두견새 울음소리
오동나무 가지마다 초록으로 집을 지어도
낡은 소파에 앉아 그냥 드라마처럼 울고 웃다가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태양이 뜨거운 입김으로 해변을 달리며
파도가 몸을 뒤척여 밤바다
어두운 영혼을 향해 물거품으로 노래해도
높은 나뭇가지 위 둥지 튼 새들을 생각하다가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굽이진 강물 따라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마을로 내려오고
비로봉에서 길 재촉하던 마른 단풍마저
너럭바위에 내려앉아 온 몸을 뒤척여도
늦은 지하철 속에서 내 자리를 못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슬픔으로 가는 겨울 들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시계추처럼 오지 않는 사람 기다리다가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산다는 건 결국 가슴 속에 간직한 보따리들
하나씩 돌아보며 버리는 일
이 해도 다 버리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