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통독
김기영 목사(화성교회 원로)
박윤선 주석을 통독한 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뭐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필자가 기회가 있어서 통독을 하면서 느낀 점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영음사 일은 고 안만수 목사님이 열정적으로 해 오시다가 소천하신 후 이사님들이 다 목회에 바쁘시고 필자가 은퇴한 목사라 시간이 있으니 맡아 달라는 요청으로 피할 길 없어 맡게 되었고 영음사가 출판한 책들의 중심이 되는 주석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통독하게 된 것이다.
박윤선 주석은 교육전도사 시절에 전질을 구입하여 설교준비에 참고하였지만 통독은 하지 못했다. 1975년도에 이미 박윤선 이름은 널리 알려지고 그 주석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당시는 책값이 비싸서 구입할 염두를 못 내다가 교육전도사 처음 담당하고 첫 사례를 받아 십일조 바치고 남은 돈으로 주석 한질을 구입하니 남은 돈이 없었고 그 주석을 목회하는 동안 설교 준비에 참고하다가 벽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책이 못쓰게 되고 영음사일을 맡으면서 한 질을 받게 되어 읽는 중이다.
박윤선 주석을 오래된 주석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새로운 시대인데 옛날 주석은 낡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21세기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문화는 새로운 사상과 혼합되어 실타래처럼 얽혀 근본을 찾기 어렵게 복잡해지고 신학 사상은 밑바닥까지 흔들리고 있다. 또 시중에 나온 외국 번역 주석들도 오래된 주석이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다.
박윤선 주석은 저자가 1949년 요한계시록 주석을 시작으로 1979년에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까지 30년에 걸쳐 집필을 완료한 책이다. 책마다 다르지만 대개 20 쇄를 내었고 그중에서도 공관복음은 25쇄를 거듭할 만큼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사랑을 받아왔었다. 이번에 2년에 걸쳐 성경 본문을 개역개정 성경으로 바꾼 전면개정판이 출간되는데, 신약은 완간되었으며 구약이 진행 중이다. 한글세대에 맞게 어려운 한자를 꼭 필요한 경우에만 괄호 안에 남기고 전체적으로 한글 표기를 지향하였으며, 예전에 사용되던 용어들을 보다 일반적인 표현들로 수정하였고, 가독성을 높이기 위하여 활자를 키우고 디자인도 새롭게 하였다. 박윤선 주석을 오랫동안 사용해온 분들 가운데는 기존 개역한글 성경 본문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분들이 있어서 기존 개역한글 성경을 본문으로 하는 주석도 계속 출간된다.
박윤선 주석은 말씀이 살아있는 주석이다. 철저한 칼빈주의 사상과 개혁주의 관점에서 쓰인 주석으로 신학적 깊이가 있고 다른 학자들의 해석을 소개하고 자유주의 학설까지 비판해놓아 교역자들은 깊이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고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자유주의 진영에서 높이 평가하는 칼 바르트의 입장도 일목요연하게 비판해 놓아 목회자들이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또한 꼭 필요한 구문에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여 목회자들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은 평신도가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박윤선 주석은 설교를 위한 주석이다.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 중간 중간에 개요와 해석에 입각한 설교를 실어놓아서 평신도들이 읽기에도 은혜가 된다. 박윤선 주석을 읽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하나님의 주권”,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인간 편에서의 말씀 연구와 기도”를 힘써 강조하면서 특히 “철저한 회개”를 외친다. 저자가 주석을 집필하는 과정에서도 기도를 많이 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써 내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정작업은 전문가가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내 자신도 먼저 구 양장판을 통독하고 개정된 주석 파일을 통독하게 되니 두 번 읽게 된다. 영음사 일이 아니면 나도 주석을 통독까지 하지 않을 것 같다. 주석을 통째로 읽는 것은 지루하지만 조금 지나면 맛이 있고 흘러 보내는 아까운 시간을 귀하게 사용하게 된다. “하나님 말씀은 읽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말씀은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먹어야 양식이 된다. 성경통독을 마친 분들은 주석 통독도 도전해 보는 것이 신앙과 목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통독의 유익은 저자 박윤선을 만나게 된다. 책에는 지은 사람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박윤선과 외적 만남의 기회가 없는 젊은 분들에게 책을 통한 내적 만남은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읽으면서 은혜 받은 박윤선 주석의 신학사상을 몇 가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⑴ 하나님의 주권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다. ⑵ 성경에서 성경으로 – 성경이 말하는 것은 철저하게 연구한다.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⑶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 –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⑷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 중 하나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⑸ 신앙은 관념적 이론이 아니고 체험이다. 하나님 사랑을 가슴에 체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⑹ 신앙생활은 기쁨으로 한다. 사역도 기쁨으로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는 봉사는 봉사가 아니다. ⑺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자가 되지 말자. ⑻ 신앙과 목회는 능력이다. 영적으로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자. ⑼ 계시 의존 사상 – 신앙은 인간의 이성이 아닌 믿음으로 시작한다. 거듭나지 않은 이성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⑽ 불신 세상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가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 ⑾ 신자는 믿을 때 자신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임을 안다.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한 선택이며 승리의 근거이다. ⑿ 언약과 성취는 창세기부터 계시록을 관통하는 물줄기이다.
이상은 필자가 박윤선 주석을 통독하면서 느낀 점을 두서없이 나열하였다. 개정판이나 이미 구입한 구 한글판 어느 것이나 편한 것으로 한번 쯤 통독하면 새로운 체험이 되리라 생각 본다. 정암 박윤선에 대하여서 깊이 알고 그분의 신학에서 영향을 받으시고 신앙을 본받으려고 애쓰는 분들이 많은데 필자가 주제넘게 글을 쓰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다만 영음사 일을 맡은 자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다.
김기영 목사(화성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