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문화 단상
가정호 목사(부산 세대로교회)
따뜻한 인간관계는 없이 어떻게 자신이 알려주고픈 내용만은 일방적, 열정적으로 보내는지
한 눈에 파악되지 않을 정도의 스케줄이나 일감들은 삶의 질을 떨어트리고 몸을 상하게 만든다. 스케줄을 관리해야 할 정도라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들은 단정하게 정리하는 것이 맞다. 그중에 카톡에 대해서 생각을 기록해 본다.
어떤 분들은 매일 카톡으로 뭔가를 보내 준다. 자신의 신념이나 받은 은혜를 나누거나 전달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인간관계나 따뜻한 정서적 공감대를 이루지도 못한 채 카톡에 뜨는 1을 매일 매일 지우는 일도 때론 버겁다.
뭔가 목적을 가지고 보내는 분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게 보내는 개인이나 그룹이 열개쯤 되면 일순간 버거운 마음이 든다. 자신의 관계모형을 그려보면 좋겠다. 정말 서로 따뜻한 관계, 서로를 책임져주고 사랑을 공급하고, 돌봄의 관계가 아니라면 매일 습관적으로 뭔가를 보내는 일에 대해서 지양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글이나 생각이 상대의 손가락 끝에서 가볍게 지워지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면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일에 삶을 들이든지 말이다. 이건 나의 삶과 사역에도 예외가 아니다.
카톡으로 뭔가를 매일 보내는 관계는 애정하거나 추앙하거나 긴밀한 사랑의 관계로 맺어진 가족이나 연인,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된 이들의 모임, 공통의 목적을 가진 그룹이면 족하다. 그것조차도 상대를 배려한다면 너무 자주가 아닌 가끔이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자신이 일상 속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시간과 재정, 인생사를 나누는 소그룹 공동체라면 카톡보다는 가끔 메일이나, 전화를 통한 상호관계를 친밀하게 나누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관계는 반드시 상호적이어야 한다. 일방적인 관계는 상대에게는 가혹하다. 일방적인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는 것은 마음을 모아 사용해야 하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심지어 폭력적인 느낌마저 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비교를 하자면 또 다른 SNS 매체인 페이스북은 그나마 카톡보다는 인격적이다. 물론 어느 편을 들고자 함이 아니다. 카톡은 탈퇴하기가 매우 어렵다. 공동체성을 기계적으로 묶어두는 기능이 암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최소한 페이스북에는 자신의 글을 하루에 서너 개씩 올려도 누가 무엇이라 하지 않는다. 정 보기 싫다면 팔로우 취소나 극심한 경우엔 친구 끊기를 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분은 매일 보내는 카톡에 정성껏 답장을 해도 별 반응이 없으시다. 심지어 내가 친절하게 안부를 물어도 메마른 답변뿐이다.
“잘 지냅니다.”
이 한 마디 이상의 따뜻한 인간관계를 원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카톡에 자신이 알려주고 싶어 하는 내용만큼은 매일같이 그렇게 일방적, 열정적으로 보내는지 엄청 궁금하다.
아래는 매일 오는 어떤 분의 카톡 문자에 필자가 양해를 구한 내용의 답글이다.
“죄송합니다. 제게 맡겨진 일들로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카톡 동역에는 한계를 느낍니다. 회장님과 회장님의 일을 응원합니다. 다만, 카톡으로 끊임없는 소식을 받는 것에는 어려움이 좀 있습니다. 혹 필요를 느끼신다면 메일로 소식을 부탁드립니다. 카톡은 한 시간 후에 나갑니다.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