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기, 어떻게 할까?
< 한준명 집사, 성심교회 >
- 글 읽기의 출발은 듣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수한 말들을 듣는다. 한 단어와 두 단어를 사용하는 시기를 거쳐, 세 단어를 말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이미 문장을 구성할 수 있는 상태에 접어든다. 그 뒤 엄마와 대화하면서, 혹은 책을 통하여 듣게 되는 무수한 이야기를 듣는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된 말’에 주의를 집중한다.
이 때 어린아이들은 ‘동화’를 즐겨 듣는다.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과학동화’니 ‘수학동화’니 하는 것 또한 근본적으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어린아이의 속성에 기반을 두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취학 전 아동들의 독서는 이야기를 ‘듣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듣는 많은 이야기는 언어를 풍성하게 하고, 문장 구성 능력을 발달시키고, 상상력을 풍성하게 한다. 이 시기에 일찌감치 글자를 배우는 것은 오히려 해롭다. 글자에는 감정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상황을 실감나게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의 톤을 통하여 아이들은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고 상상력을 기르게 된다. 반면에 일찌감치 글자를 익힌 아이들은 부모를 성가시게 하지 않고 책에 몰두하는 듯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메마른 독서에 장시간 노출이 되는 결과만을 가져온다. 미취학 아동들의 독서가 ‘듣기’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자를 본격적으로 배우는 시기에는 이제 학교에서의 학습이 병행되면서 아이의 지적 능력이 급격히 향상된다. 그러나 이 시기 아동들의 독서는 ‘동화’ 차원에서, ‘전기문’을 읽는 것으로 확장된다. 전기문도 어떤 인물의 생애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확장’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를 보내고 고학년이 될 무렵, 이야기 방식의 독서에서 벗어나 개념적인 독서로의 확대가 이루어진다. 이제 그림이 없어도, 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도, 사회, 관계, 철학, 과학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에 대한 사고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를 만난다. 이 결정적 시기와 더불어 우리 아이들이 독서는 ‘중단’된다.
많은 아이들이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지는 시기가 또 이 시기이다. SNS를 통한 의사소통은 즉각적이고 파편적이다. 이러한 읽기와 쓰기의 방식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통하여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에 매우 서툴다. 장면을 인식하여 사고하는 단계에서 개념을 인식하여 사고하는 단계로의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독서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서 가중되는 학습에 대한 부담은 더더욱 독서에게 아이들을 멀어지게 한다. 책을 읽고 있으면 “넌 공부는 안 하니?” 하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책도 좀 읽어야 되는 거 아니니?” 한다.
학습을 위한 독서, 독서기록장을 작성하기 위한 독서를 하니 책읽기가 재미있을 리가 없다. 책읽기가 즐거움이 아니라, 의무이고 숙제가 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의미 있는 책을 가져다 줘봤다. 그저 “됐거든?”이라는 한 마디만 돌아오기 십상이다.
- 우선 읽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왕도는 없다. 읽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이 5분이 되었던 10분이 되었든 상관없다. 정해진 시간에 어떻게든 책을 펼쳐서 읽다가 그 시간이 끝나면 과감히 덮는 것이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졌던 “아침 10분 책읽기 운동”은 정해진 시간에 책을 펼쳐 읽는 습관을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 시간에 전교 학생들에게 동시에 책을 읽히고, 10분 후에 책을 덮고 다른 공부를 하게 했더니,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심지어 집에서도 책을 읽더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지닌 동물이다. 이 실험의 핵심은 일단 읽는 기회를 주었더니,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면서 읽기가 지속되었고, 읽기의 습관이 형성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는 무언가 부족할 것 같다. 무엇이고 확실하고 체계적인 방법이 있을 듯하다. 그래서 여기 독서의 방법으로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SQ3R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 독서를 위한 SQ3R 방식
효과적인 글 읽기 기법(SQ3R)은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의 심리학자 로빈슨(Francis P. Robinson이 미 국방부의 요청으로 개발했다. S는 Survey(훑어보기), Q는 Question(질문하기), 그리고 3R은 Reading(자세히 읽기), Recite(암송하기), Review(다시 보기)와 같은 순서로 독서를 하는 것을 뜻한다.
1) SQ3R로 알아보는 독서방법
Survey는 제목, 소제목, 목차 등 눈에 띄는 부분을 간단하게 읽으며 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짐작하는 단계고, Question은 앞서 훑어본 제목과 내용들에 대해 질문거리를 만들어 내는 단계이며, Reading은 말 그대로 책을 읽는 단계이다. Recite는 지금까지 읽은 내용의 주제나 글을 쓴 동기, 추측, 핵심 내용 등을 마음 속으로 정리해 보는 단계이며, 마지막으로 Review 단계에서 책을 다시 읽으며 Question에서 만든 질문 거리를 해결해 나가면서 이를 나와 우리의 문제로 내면화시켜 나가는 단계입니다.
2) 학습 방법으로도 유용한 SQ3R(예습-공부-복습)
가. Survey(훑어보기)
훑어보기 단계에서는 읽기 제목, 소재, 글의 첫 부분, 굵은 서체의 소제목, 글에 나오는 그림이나 도표 등을 훑어보게 한다. 훑어보기 단계에서는 너무 한 부분의 내용에 집중하지 말고 눈으로 대충 내용을 훑는 것이 보통이다.
나. Question(질문하기)
글을 읽기 전에 마음 속으로 다양한 질문을 만들어 내는 단계이다. 글의 내용을 예언해 볼 수 있는 질문, 배경 지식을 연결시키는 질문, 글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질문 등 여러 가지 목적의 질문을 만들 수 있다.
다. Read(자세히 읽기)
Read(자세히 읽기)는 Question(질문하기)을 통하여 정한 의문에 답할 수 있도록 글을 적극적으로 읽는 단계다. 정신을 집중하며 읽되, 글에서 강조하는 부분에 특히 신경을 쓰며 읽어야 한다. 중요한 용어, 개념은 물론 본문만 읽지 말고 도표나, 그래프, 그림도 빼놓지 말고 읽어야 한다. 이 때 중요한 개념들을 밑줄 그으며 읽으면 도움이 된다. 중요한 내용들을 요점 정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읽은 내용을 다시 되새길 때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라. Recite(되새기기)
각 표제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고 나면 읽은 내용들을 정리하며 자신의 생각으로 ‘재구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읽던 것을 멈추고 읽기 시작할 때 품었던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되새기기 단계는 머릿속으로 암송해 보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보다 효과적으로 읽은 내용을 기억하고, 주어진 질문에 효과적인 답을 하기 위해서는 직접 읽은 내용을 떠올리면서 적어 보면 도움이 된다.
마. Review(다시보기)
마지막 단계로, 읽은 내용에 대해 총정리 하면서 읽기의 내용을 자신의 기존 지식, 경험 및 의견 등과 관련지어 본다. 이 때는 글의 내용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서, 책에서 읽은 내용이 나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한다. 책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통해 ‘나와 우리’를 발견해 나가는 단계이며, 이러한 ‘내면화의 과정’을 통해서 지적인 성숙과 통찰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독서의 목적은 이 마지막 단계를 통해 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나가는 말
평소 우리들에게 있어 글 읽기는 어려움을 넘어서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주입식 교육에 의해 구조화된 지식을 암기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글을 읽는 기회가 거의 없다보니 당연히 서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글 읽기 또한 처음 단계부터 차근차근 훈련을 필요로 한다. 위에 제시한 SQ3R 방법을 도입한다면 보다 체계적인 글 읽기를 몸에 익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