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영향력, 제3의 길에서
늘 그랬지만 안팎으로 난세이다. 코로나19 상황 악화와 국내외 재해 재난 소식들 와중에 이웃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까지 닥쳐 뒤숭숭하고 소란하다. 거리두기 단계 상향과 대면 예배 중단 등으로 사회와 교회 모두 극도의 피로감에 빠졌다. 이러한 때 교회는 더욱 정체성과 균형감각을 견지하고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제3의 길로 가야 한다.
제3의 길이라 하면 왠지 문제에 직면하기보다 에둘러 가는 자들의 소극적이고 비겁한 도피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이 땅의 시민인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속에서 어떤 한 세력만의 사상, 이념이나 정책을 무턱대고 지지할 수 없다. 당대의 여러 질서와 가치의 옳고 그름을 항상 진리의 잣대로만 분별해야 하는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 그 길이 제3의 길이다.
그것은 사회의 문제에 수수방관만 한다거나 사회적 단체로서의 기독교의 실리만을 추구하는 가시적 세력화를 도모하는 길을 말하지도 않는다. 부단히 말씀에 비추어 어느 것이 옳은지 최선을 다해 판별하고 답을 제시하려고 애쓰되 어느 한 편에 눌리거나 쉽게 한통속이 되지 않고 긴장을 유지하며 사회에서 독특하고 독립적인 영향력을 갖는 길이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어느 정파나 정당을 지지하거나 그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은 시민 개인으로서의 자유이다. 그러나 교회는 애초에 어느 한 편에 들어가 그들을 대변하거나 그들의 힘을 빌려 세력을 과시하는 자리를 지향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는 공공의 사안에 그것이 성경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성경적 윤리와 가치에 얼마나 부합하거나 근접하는지 항상 살펴 그 답을 제시해야 한다. 사안마다 옳고 그름과 최선책을 성경에 근거하여 선포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코로나19의 악화된 상황에서도 교회는 더 인내하며 사회 질서 안에서 시민으로서의 책임에 충실할 것을 성도들에게 잘 주지시켜야 한다. 아울러 불합리하고 과도한 요구에 대해서는 정중히 아니라고도 말해야 한다. 그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성경적 근거이다. 당대에 그것을 찾고 제시하는 일이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몫이다. 신학적, 성경적 원리가 불분명한 일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더라도 별 도리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성경적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파와 교회의 실리를 떠나 잘 분별하여 바른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윌리엄 템플(1881-1944)은 ‘기독교와 사회질서’에서 예컨대 실업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는 요구가 있다면 기독교는 그 문제에 연관한 어떤 특정한 경제사상, 정치사상에 기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했다. 또 그러려면 그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하는 자들에게는 기독교가 특정한 구체적 해결책을 말해 주진 않지만 만성적 실업 문제가 있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는 점과 그 해결책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사회에 요청하고 경고할 수는 있다고 했다.
그는 덧붙여 “교회가 그 의무를 다할 때 양편으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은 다분하다. 즉 교회가 단순히 그 원리들을 제시하고 그 원리들이 침해받을 때 그것을 지적하기만 해도 교회가 ‘정치적’이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또한 특정한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자기들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교회가 무익하다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만일 교회가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 그 두 가지 비난을 무시하고 가능한 한 모든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며, 또한 모든 정파에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교회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불신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어서 실제로 극심한 곤경에 처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난세일수록 사회는 내색하지는 않지만 교회를 바라본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느 때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참으로 인내와 진중한 자세가 필요한 시절이다. 코로나19 극복하는 일에 국민으로서 함께 인내하며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한다. 뒤숭숭한 정치의 계절에 편 가르기에 휘둘려 흔들리지 않고 진리에 견고히 기초한 제3의 길에서 감동과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