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위기?
임용민 목사(새소망교회)
주님께서 신약 교회에 행하라 명하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회복키 위해 직무와 은사를 회복해야
코로나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언론들은 교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가 6%라고 소리 높여 오피셜했다. 대부분 교회는 전도가 안 된다고 한탄한 지 이미 오래고, 이와 무관하지 않게 주일학교가 축소되고, 중고등부, 청년대학부가 거의 사멸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교회는 더 이상 찾아올 사람이 없는 위기에 처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을 한 순간도 잃은 적 없다. 지금도 무적의 왕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앉으사 대권을 행사하신다. 대요리문답은 그리스도의 왕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을 세상으로부터 자신에게로 불러내고(행 15:14-16, 사 55:4-5, 창 49:10, 시 110:3) 그리하여 그들에게 직분자(엡 4:11-12, 고전 12:28), 율법(사 33:22), 그리고 ‘주께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그들을 다스리는 수단인 치리’(마 18:17-18, 고전 5:4-5)을 주심으로써, 또한 택함 받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고(행 5:31), 그들의 순종에 상을 주며(계 22:12, 2:10), 그들의 죄로 인해 [그들을 책망하여] 교정하고(계 3:19), 그들의 당한 모든 시험과 고난에서 그들을 보존하고 지원하며(사 63:9), 그들의 모든 원수를 억누르고 정복하고(고전 15:25, 시 110편), 그리고 그 자신의 영광(롬 14:10-11)과 그들의 선(롬 8:28)을 위해 모든 일을 강력하게 정하심으로써, 게다가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에 복종하지 않은 나머지 유기된 자들에게 복수를 하심으로써(살후 1:8-9, 시 2:8-9) 왕의 직분을 수행하십니다.”(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문서들, 정성호 역)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위해 교회를 통해 다스리시고 보호하신다. 눈에 보이는 수단들을 주셔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이 일을 행사하시는데,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도 실패하신 일이 없다. 온전히 이 일을 이루시고, 지금도 온전히 일하신다. 앞으로도 그렇다.
실질적으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사람들이 말하는 교회의 위기론에 대해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오히려 대요리문답의 관점을 따라 가면, 보이지 않는 참된 교회는 위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 교회와 분리되지 않은 보이는 교회에게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게, 그 수단들을 통해 역사하는지 가르쳐 준다.
그러나 이 땅에 보이는 교회는 그 속에 함께 모인 자들 중에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은혜의 외적인 수단들을 기뻐하지 않는 자들도 함께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것은 주님께서 일찍이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셔서, 우리에게 경고하신 것과 같다. 게다가, 보이는 교회가 점점 더 주님이 택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외적인 수단 그 자체로 만족하며 사역하지 않고, 사람들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사람이 만든 수단들을 사용하길 기뻐할 뿐 아니라, 주님이 명하신 은혜의 외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자들을 무능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보이는 교회의 목적이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하는 것에 있는 줄로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말씀하신다.
현재 교회가 당하는 위기는, 사람들의 신뢰도가 낮아진 것에 있지 않다. 이런 위기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위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위기는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하고, 발람의 교훈을 따르고, 처음 사랑을 버리고, 사단의 자리에 살고, 받은 진리를 생각하고 지키지 않고, 인내의 말씀을 붙들지 않음으로 주님께 책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고, 죄악을 고집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세상이 교회를 평가할 때, 교회의 참된 본질에 기초해서 신뢰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이들에게는 교회가 자신의 생각과 상식 수준에 맞기를 원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이익을 주면 좋을 뿐이다. 이들은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의 의논에 따른 작정하심을 입어, 선택의 작정의 실행의 기초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자들의 모임이라는 진리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현대 한국 교회가, 타락한 세상의 관점에도 전혀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러한 자들에게조차도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문제는 현대 한국 교회가 규모가 없거나, 실력 있는 자들이 없거나,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자들이 적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 교회는 장로 대통령을 산출했고, 수많은 국회의원들과 정부 관료들을 산출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의 위기를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이것은 보이지 않는 교회와 분리된 일이 없는 보이는 교회의 위기라고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보이는 교회의 위기는 진실로 택함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무관할 뿐 아니라, 택함을 받은 성도들은 단 한 순간도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으로 부르시고 거룩케 하시는 일에 낙오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보이는 교회인 한국 교회의 위기는 거룩하지 않고, 합법적이지 않은 것에 있다. 우리가 너무나 부정했던 것이 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실제로 종교 개혁 이후 오늘날 한국교회 같이 은혜의 내적인 수단인 믿음과 회개가 오용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무지한 시대가 없다. 또 은혜의 외적인 수단인 말씀 선포와 성례와 기도와 권징이 이렇게 무질서하고 부패한 시대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교회에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은혜의 수단들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의 명예와 이익과 감정에만 치중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시대는 없다.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자신의 직분으로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리스도 그분 자신의 영광만 드러나길 원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과 명예를 높이길 원한다. 심지어 목사 장로 집사가 교회 정치가 규정한 자신의 직무를 모른다. 당회와 노회와 총회가 주님께서 주신 헌법적 직무와 권한을 모른다. 이 세상에서 일반 직장도 자기 직무를 모르는 직원을 그냥 두는 경우는 없다. 기업의 업무와 그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에 대해 방조하거나 칭찬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교회는 자기 직무를 모르고, 치리회로서 직무와 권한을 모르거나 오용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현실을 무적의 우리 주님께서 그냥 두고 보시겠는가? 단 한 번도 자기 백성을 잃어 보신 일이 없으신 구주께서 침묵하시겠는가? 주님께서 일어나 원수를 멸하실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의해 부패한 성전 의식법을 정결케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때 제사장직의 시한이 다 된 자들이 주님의 정결 작업을 보고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빼앗길 것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죽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서 이들 저주스러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택하신 자들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와 같이 주님의 싸우심은 언제나 그의 참된 백성에게는 생명과 영광을 제공했다. 그러나 주님의 거룩한 정화 작업을 자신들의 위기로 알았던 자들은 주님을 죽여서 승리한 줄로 착각했을 뿐 아니라, 복음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로 남아 망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한국 교회를 향한 사회적 신뢰도 저하를 놓고 보면 우리 시대의 보이는 교회는 위기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전히 사람의 관점을 찾아 헤매다, 주님이 명하시는 참된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위기를 맞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예배를 찾다가, 참된 성례를 회복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위기를 맞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꿈과 소원을 채워주기 위해 헛된 기도만 하다가, 주님이 가르쳐 주신 참된 기도의 정신을 회복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위기를 맞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주님께서 자기의 몸된 교회를 향해 불법을 불법이라고 말씀하시며 정화하시는데, 이 세상이라고 불법을 행하는 교회를 기뻐하고 환영하겠는가? 단순한 도덕성의 회복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이 사회를 향해 사회적 기여도를 더 높이는 것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오직 주님께서 신약 교회에 행하라고 명하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교회의 목사 장로 집사가 자신의 직무와 은사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거룩한 치리회들이 주님께서 계시하여 주신 그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에 합당하게 당회, 노회, 그리고 총회의 직무와 권한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