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도자는 유명해지기를 피해야
<김수흥 목사 | 전 합신 초빙교수>
세례 요한처럼 자신은 지극히 낮추고
그리스도만 높아지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사람들은 대체로 유명해지기를 원한다. 어떤 아이에게 피아노를 배우라 하니 피아노를 배우면 유명해지냐고 부모에게 되물었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유명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심히 힘든 일만 아니면 무슨 일이든 다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경우 대단히 힘든 일이라도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사력을 다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산을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고 오른다. 그리고 얼굴이 터져 찢어지는 운동도 마다하지 않고 연습해서 세계적인 선수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들은 유명해지기를 원하지 않아야 한다.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필자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주 위험한 일인 줄 알고 꽤 이른 나이에 앞으로 유명해지지 않기를 위해 2번이나 간절히 기도한 일이 있다. “하나님이시여, 저는 유명해지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제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며칠 간격으로 간절히 두 번 기도했다. 많은 세월이 지나보니 과연 하나님께서 필자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필자는 지금 대성한 인물도 아니고 유명해진 인물도 아니다. 또 필자의 마음속에는 “유명”이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이다. 우리가 혹시 유명해졌다 하더라도 세상의 유명함은 아무 것도 아님을 스스로에게 말해야 하고 또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고전 7:29-31).
우리는 유명해지기를 원할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처럼 자신은 지극히 낮추고 그리스도만 높아지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한다. 세례 요한은 자기 주위의 제자들이 예수님 앞으로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으면서 “그(예수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말했다. 세례 요한 같은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자신을 알고 또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았기에 자기는 역사에서 사라져야 하고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셔야 할 것을 알았기에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한 것이다.
최근만 아니라 오래전부터도 우리나라 교계에서는 유명한 종들이 수난을 당했고 또 지금도 당하고 있다.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등지고 유명해진 것이 아니지만 어쩌다가 보니 자기의 유명함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렸기에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유명함을 허무시기 위해 여기저기서 유명한 목사가 만년(晩年)에 큰 어려움을 당한다. 물론 교단적으로 크게 유명해지지 않았던 분들 중에서도 자기 교회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분들은 교회를 퇴임하는 때에 교인들과의 사이가 이상하게 돌아가서 목사의 절대적인 영향은 말끔히 사라지고 추레한 사람이 되고 만다. 목사가 큰 약점도 없는데도 마치 큰 죄나 지은 사람처럼 회자되고 만다. 예수님께서 목사의 영향력을 허무시는 것이다. 그런고로 목사들은 자신들이 혹시 그리스도의 광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살펴야 한다. 주위 사람들이 너무 자신을 높이지는 않는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고로 목사들은 그리스도를 전하면서도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주 조심해야 한다. 차라리 목사들은 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알도록 말해 주어야 한다. 바울 사도는 항상 자신의 약점을 자랑했다(고후 12:9-10).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말했다(고후 12: 10). 그는 약한 것을 자랑하고 다녔다. 약한 것을 자랑해야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능력 있게 사역할 수가 있고 또 자신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박윤선 박사는 자신이 죄인이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했다.
우리는 한 교회에서나 혹은 한 교단에서 높아지고 유명해지는 것을 쥐약처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유명해지는 것을 꿈에라도 경쟁할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시무하는 교회당의 크기, 그 사람이 받는 사례금 액수, 그 사람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 수, 이것들을 비교하며 서로 더 유명한 전도자가 되기를 경쟁했다가는 나중에 그리스도께서 부수시는 날 참으로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