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회 총회 참관 후기
광의회로서 총회와 치리회
이차식 목사
·경북노회총대
·덕일교회
“사사건건 총회의 결정에 의지하려는 유아적 발상 없어져야”
우리가 완전한 개혁교회의 정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처럼 쉽지 않
으리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한
다고 초두에서 언급하고 있기에 총회를 참관한 자로서 필자의 눈에 아쉬웠
던 점들만 몇 가지 조심스럽게 기술해 보고자 한다.
1. 광의회가 신경을 써야 할 사건들과 소의회, 즉 당회나 노회가 해결해야
할 사건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광의회들이 취급하는 사건은 소의회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상정한 사건이다.
예를 들면 외국교회와의 관계, 전체 교회의 복리문제, 이단에 관한 전체 교
회의 명료한 교리, 선교 등이다.
광의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치리회가 아니므로 권징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권
징문제는 원칙적으로 당회에 속하나 우리의 경우
노회가 준 상설회로 되어
있기에 노회의 문제에 속한 것이기도 하다. 당회만이 고유한 치리권을 가지
는 이유는 개혁교회의 교회관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목사, 장로, 집사 이 세 직분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그를 대표하며 그를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 세 직분이 갖추어질 경우 완전한 교회로 보
는 것이다. 이 세 직분의 권위와 의무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하여 사용되
도록 말씀을 수종드는 위임된 권위를 가질 뿐, 치리회가 자체적인 고유한 권
위를 가지지 않는다.
이 직분들은 개 교회를 위하여 세워졌으며, 이러한 직분들의 권위와 의무는
개 교회에 한한 것이다. 당회는 교회의 직분의 자격을 가지고 모이는 치리회
이며 개 교회는 교인수가 많든, 적든 완전한 교회인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금번 총회에서 명시하기로 한 70세 정년제에 대한 내용이 3
직과 관련하여 언급이 될 만하다고 본다. 앞으로 광의회와 소의회와의 관계
를 좀더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2. 그리스도 왕권 확립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개혁교회들이 노회가 크든 작든 같은 수의 대의원을 파송하는 것은 교권에
대한 여유를 주지 아니하고 그
리스도의 왕권을 확립하기 위함이다. 물론 여
기에는 교회가 장로를 세울만한 형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로를 세우지
않음으로 교회정치의 우를 범할 가능성도 있다.
교회정치는 세속정치와는 전혀 다르다. 권징에 있어서 사용하는 어휘면에서
도 재판회, 원고, 피고, 죄증설명서, 상소와 같은 용어를 거의 찾아 볼 수
가 없으며 이러한 용어들을 피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합신 교단의
권징조례에는 지나치게 세속정치적인 용어들로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 교단이 그리스도의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우리 헌법과 캐나다 호주
와 같은 개혁교회들의 질서, 돌트 질서등에 대하여 좀 더 면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혁교회들은 우리의 경우 처럼 권징에 대한 부분이 방
대하게 따로 있지 않다.
3. 군림금지의 개혁주의 정치 원리를 살려나가야 한다.
돌트신조의 경우 76개조의 교회 정치질서 안에 직분과 교리 감독, 여러 가
지 회의들, 예배와 성례, 그리고 권징이 모두 들어가 있다. 아주 명료하게
원리면만 제시되어 있으며 각 항들은 개교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특별히 교회정치의 결론부인 7
4조에서는 군림금지라는 항목이 있다. 어느 교
회도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교회위에 군림하지 않아야 하며, 어떤 직분도 다
른 직분위에 군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왕권의 확립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교회는 교회 회의를 통한 교권을 가장 두려워하며 경계한다. 합신총회
규칙에 보면 상설 재판국, 정치부, 고시부는 1노회에서 부원 2인을 초과하
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교권이 틈을 탈 수 있는 부서를 이와 같이 규정해
두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한 헌법 사항을 수정할 때는 정치부나 총회치리 협력위원회에서 본회에
그 문제를 상정하거나 헌수위에 직접 헌의를 할 수 없다. 반드시 헌법에 관
련된 내용은 완전한 교회인 당회에서 노회를 거쳐 헌의가 되어져야 한다. 그
리고 총회를 거쳐 각 상비부로 전달되어야 한다. 이는 교권이 틈을 타지 못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금번 헌수위에서 헌법 수정에 대한 연구 보고를 할 때, 신설 조항
으로 “총회가 헌법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고자 하면 노회의 허락으로 총회가
결의하고 각 노회가 수의한 후 총회가 공포한다”는 조항은 매우 필
요한 내
용이었다.
노회가 헌의해야 한다는 주요 내용이 우리 헌법수정 조항에 없다. 그러나 총
대들이 이 조항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기각을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회를 제외한 교회의 회의는 직분자로서의 자격이 아니고, 대표자(총대)의
자격으로서 모이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지 모든 총대는 한 사람이 두 사람
의 몫을 가져서는 안 되며, 모든 직분자는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것이다(돌
트 교회질서 제 25조).
그러므로 노회나 총회를 당회보다 상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보다 큰 회
의라고 부른다. 당회로부터 파송 받은 자가 총회에 간다고 해서 갑자기 신분
이나 계급이 바꾸어지지 않는다.
4. 목사와 장로직의 관계 설정문제다.
돌트 질서에는 세 직분에 대한 내용들이 설명되어 진후에, 제24조에는 직분
의 임기를 규정하고 있다. 목사직은 평생 헌신을 위해 전문적 교육을 받았으
므로 봉사 기간에 대한 제한이 없다. 그러나 장로와 집사는 당회의 규정을
따라 봉사 기간이 2년 혹은 3년으로 한정되어 있다.
당회는 매년 같은 수의 장로와 집사가 퇴임을 하고 새로 들어
오게 된다. 제
네바 장로는 1년을 봉사했는데 장로가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교회를 계속 봉
사한다는 자체가 부담이 되며, 오늘날 전도사와 같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
에 개혁교회는 이 전통을 매우 유익하며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
다.
그런데 우리 교회들은 장로가 종신직으로 선교초기부터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장로직을 목사와의 구별을 예리하게 만들어서 대치관계로 생각하는 경
향이 많다.
장로직은 원래 교인들 중에서 나온 것이며 개 교회에 속한 것이 사실이나,
그 이전에 모든 직분은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고 그를 봉사하기 위한 직분이
기에 장로직은 단순히 교인들의 대표자가 아니며,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리
스도를 대리하고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한 목사와 상호 협력관계
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총회에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형제이다. 총회장이 단상에서 증경 총회장을 향하여 어른이라는 표현
은 삼가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증경 총회장들을 먼저 호명하는 것도 개혁주의 정치 원리에 합당치 않
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본인들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으며, 교회에도 도움
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교회위에 그 누구라도 선생이나 어른으
로 세우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호칭은 총회석상이 아닌, 개인
의 자격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장로를 교인의 대표자라는 말을 할 때에 단순히 세속적인 민주주의
정치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목사, 장로, 집사직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오
는 것으로서 증거 단체이지 세력단체일 수 없으며,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것
을 주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장로들의 교회를 향한 헌신과 봉사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증
경 부총회장에 대한 총회시 언권 요청 헌의의 건은 성경적이지도 개혁주의적
이지도 않으며, 또한 장로들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매우 위험하
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5. 거짓 교리와 W.C.C를 분명하게 배척해야 한다.
돌트 질서에는 직분의 임기 다음에 신앙 고백서에 서명하는 것이 나온다. 그
들은 성경과 교리에 대한 책임 있는 생활을 강조하였으며, 다른 교리에 대해
서 누군가 주장을 할 때 면직을 당하도록 하였다(제26조는 고백서에 서명하
는 일이 나오나
, 제27조에서는 거짓 교리에 대하여 언급한다).
고신 부총회장이 합신 총회 중에 와서 세계 교회 협의회(W.C.C)와 거짓 이단
들에 대하여 보수 교단들의 단합을 강조한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격려가 되었
으며, 교리적으로 혼탁한 이 시대에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헌법에서는 “화평을 좇는다는 명목으로 분명한 비진리를 포용하는 타
협주의(예컨대 W.C.C.운동)”를 배척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선서하고 있다(합
신 헌법 2007년 19쪽).
6. 박병진씨의 ‘교회 정치 문답 조례’를 교단의 공식석상에서 인용해선
안 된다.
헌수위 위원과 증경 총회장 몇 분 중에서 헌법에 대하여 애기를 할 때, 박병
진씨의 ‘교회 정치 문답 조례’를 인용하면서 말씀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
러나 선교 초기에 한국 교회가 박병진씨의 정치 문답 조례를 참고하기로 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마치 그 책이 합신의 헌법과 관련이라도 있는 것처럼 주
장을 한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통합측에서는 지교회 설립이 15인 이상이 되면 노회의 청원을 받아 설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합신 헌법에서도 박병진의 책에서 언급한대로
(박
병진 1982년판 교회 헌법 대조 해설45쪽) 15인 교인을 기준으로 지(支)교회
를 설립하는 조항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혁교회의 교회관에 합당치 않다. 개혁교회에서는 박병진씨
처럼 교회를 교파의 가지로 본다거나 모 교회와 지교회 개념이 없다. 이를
개혁주의에서는 교권적으로 본다. 교회가 10명이 되어도 직분만 세워지면
1000명 모인 교회와 같은 권리를 가진다.
박병진의 모든 책은 교회정치면에서 감독주의를 지향한다. 뿐만 아니라, 교
회관이 전혀 다르며, 직분관과 치리회의 개념이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우
리 헌법에서 명시한 대로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을 고수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 교회정치, 권징조례및 예배모범을 우리의 교의
와 규례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합신 헌법 22쪽). 총회에서 다시는 박병
진씨의 책을 인용하여서는 안 되리라고 본다.
마치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광의회로 모인 총회는 교단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
는 대사회적, 대국가적, 대민족적인 사건들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거나 이단
이나 사이비 운동들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것을 비롯
해 범교단적인 일들
을 다루기 위함이 그 첫번째 목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교단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기보다는 점차 약화되
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총회가 그동안 수많은 절차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일에 애너지를 쏟다보니 정작 우리 교단의 정체성과 위상을 높이는 일에 등
한시 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회와 노회가 처리할 수 있거나 혹은 헌법을 해석할 수 있는 일조차도 총회
의 유권해석을 의뢰하거나 총회의 결정으로 유도하는 식의 방식은 결코 바람
직하지 않다. 이로 인하여 불필요한 헌법 수정이 남발되는 것도 문제가 아
닐 수 없다.
총회는 대의적인 안건들을 다루며 이를 신학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점차 우리
교단의 실력이 향상되는 계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사건건
총회의 결정에 의지하려고 하는 각 노회들의 유아적인 발상도 점차 사라지
게 될 것이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각 노회가 부단히 분발하고 노력함으로써 총회가 대승적
인 회의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