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없는 교회, 몸 없는 예배
–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와 예배 회복을 염두에 두고 –
이광호 교수_조에성경신학연구원, Ph.D.
◈… 성경과 역사적 신학에 비추어 올바른 교회관을 정립해야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특성을 정확히 나타내야
◈… 성도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
I. 서론
21세기의 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일컬어지
는 해체주의적 사조가 교회에도 그 영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중심으로 한
교회와 예배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실존적 의미를 상
실한 현대의 위기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하지 못한다면 결코 온전한 신앙의
자세를 견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교회는 성경말씀과 역사적 건전한 교회의 신학에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 십자가 표지가 있는 건물 아
래 사람들
이 모여 종교적 활동을 하면 그것만으로 온전한 교회라 할 수 없다.
모든 성숙한 교인들은 자기가 속한 교회가 과연 산 교회인지 죽은 교회인지
살펴보아야 하며, 참 교회인지 거짓 교회인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인간의 종교적 욕망을 추구하는 장(場)이 될 수 없으며, 예배
가 인간의 종교적 욕구를 발산하는 시간일 수 없는 것이다.
상식적인 교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속한 교회를 산 교회이며 참 교회라 말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부는 개인적인 성향이나 취향에 따라 결정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신학에 기초한 객관적인 판단이 있어야 한
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그것을 위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
함으로써 교회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징표는 살아서 사고하는 머리에 몸이 온전히 붙어 있어
야 하며 그 몸에 살이 차 있고 피가 정상적으로 흘러야 한다. 그렇지 않다
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죽은 시체일 따름이며 인간으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죽은 시체를 방치하게 되면 엄청난 해악이 발생하듯 교회 역시 그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기
가 속한 교회가 생명있는 참된 교회라 생각하며 자신의 신앙
이 옳다고 여길지라도 그에 대한 타당성 있는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하
는 점은 항상 냉철하게 살펴져야 한다.
우리가 현 시대 가운데 처한 교회를 논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바는 예수 그
리스도가 어디서 발견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그의 몸과 연관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
가 하는 점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우리 시대 복음의 정도를 벗어난 신학자들은 예수님을 교회 밖에서 찾으려
하며,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아니라 세상 가운데 존재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노동현장에 있다고 생각하며 가난한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인간들의 일상적인 삶 터에 존재하면서 세상과 사회 가
운데서 활동하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과연 인간들이 생각하는
장소에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이 계시는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의 머리라는 점과 교회 공동체가 그의 몸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
다.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을 때 교회의 의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
배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마지막 때가 되면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믿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물론 그 가운데는 보다 심오한 의미가
들어 있겠지만 말이다.
◈… 예배는 천상의 하나님으로부터 발생하며 그 현존 드러내야
◈… 예배의 중심에는 언제나 말씀과 성찬이 언약으로 존재해야
◈… 인간중심과 인간경험이 중심되는 예배가 교회 본질 위협해
II. 교회의 본질적 기능
1.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
교회의 본질적 임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
이 교훈하고 있는 진정한 예배에 대한 이해를 해야만 한다. 성경을 떠나 인
간 스스로 만들어낸 예배는 종교행위가 될 수 있을지언정 하나님에 대한 진
정한 예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예배라면 인간들이 아무리 정성을 기울인다 할
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구약성경
과 신약성경의 기록을 통해 그런 예들을 얼마든지 많이 볼 수 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신다. 말씀을 통해 허락하신 직분들로써 성령
께서 성도들의 참된 예배를 도우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사역
의 의미가 예배 가운데 실존적으로 살아있어서 성도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주님께서 제정하신 직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예배와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주님의 백성은 천상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들의 예배하는 종교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
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아 그의 백성이 되어 예배하는 자리에 온전히 있는 그
자체가 하나님을 예배함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모의 태중에 어린 아기가 있다면 그는 아직 아무 것도 할 수 있
는 능력이 없다. 태중의 아기는 사고능력이나 판단능력이 전혀 없으며 행위
능력이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태중의 아기들은 종교적 인식과 의도를 통
해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태중의 성
도들 역시 태중에서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녀가 아직 태중에 있다 할지라
도 그 어머니의 예배참여
를 통해 다른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동참할 수 있다. 이
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배의 일차적
의미는 성도의 결단이나 행위가 아니라 그 존재에서 발생하게 된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올바른 말씀선포와 성례의 시
행이며, 성도들의 순종은 그 뒤에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로
써 참된 예배는 인간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순종하
며 드려지는 예배여야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
2. 인간들의 종교행위로서 예배는 하나님께 유효한가?
예배는 개별 인간이나 집단의 자기 의도에 따라 매 주일마다 행해지는 종교
적 행사가 아니다. 그것이 설령 순수하고 좋은 의도를 가졌다할지라도 그것
자체로서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의 요구에 따라 순종하며 예배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이다.
예배는 개인의 종교적 취향이나 기분에 달려있을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인본
적인 요소들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참된 예배는 주변의
분위기와 설교
자의 복장이나 언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예배 자리에 모인 교인들을 설득하는 방편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지
는 선포적 개념을 강하게 띠고 있으며 그 선포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말씀
선포여야 한다. 그것은 천상의 주님과 성령 하나님의 간섭 가운데 이루어지
는 사역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자신의 감정에 따라 설교자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예배라 할 수 없다.
소위 찬양대가 수준 높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려주면 그것이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한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하게 치장된 예배당의 분
위기가 진정한 예배를 위한 조력자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도리어 진정한 예
배를 방해하는 역기능을 할 수 있다.
예배시간에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달콤하고 감미로운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교인이 진지한 마음으로 감격스런 예배시간을 보냈
다고 해도 그것 자체로서 훌륭한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결코 인간들의 종교심으로 말미암아 시도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
이 듣기에 아름다운 음악이나 화려한 분위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에는 인간들이 보고 듣기에 호소력 있는 윤
리적 설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들의 언어로 점철된 언술은 스스로를 속
이는 종교적 행위일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왁자지껄하여 흥이
나면 참된 예배인 것이 아니며, 종교적 행동 자체가 참된 예배를 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설령 위에 열거된 모든 것들이 동시에 충족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이 올바르게 선포되지 않으면 나머지 것들이 아무리 좋게 느껴질지라도 올바
른 예배가 아니다. 그런 자리에 기분 좋게 몇 시간씩 앉아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찬송가를
부르며 가슴 뿌듯한 감격을 누린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
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참된 예배는 개인이나 집단의 감정
에 달린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 즉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현존하는 의미 없이 참된 예배가
가능
한가?
예배의 의미는 예배당에 모인 성도들에게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천상에 계
신 하나님으로부터 발생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상징적
현존을 통해 드러난다. 그것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직분의 기능이 요구된
다.
예배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의미가 하나님의 의도
에 따라 올바르게 존재해야 한다. 올바른 말씀선포와 성례의 시행과 권징사
역이 목사, 장로, 집사 직분에 의해 보호됨으로써 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져
가게 된다.
예배의 가장 중심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목사 직분을 맡은 형
제가 그 말씀을 주님의 뜻에 따라 교회 앞에 선포하게 된다. 말씀 사역자인
목사는 자신의 종교적 의도를 관철시킬 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
로 선포할 수 없다.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 역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을 겸손하게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로 직분을 맡은 형제들은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의 설교를 보호하는 의무
와 그 설교를 감독하는 의무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아직 어린 성도들이 달
콤하고 감미로운 말을 듣기 원해 목사의 설
교를 굽게 하려 할 때 그것을 방
지함으로써 목사의 설교를 보호해야 하며,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설교를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교회를 위해 신실한 감독의 의무를 다해
야 한다. 목사의 말이기 때문에 무조건 들어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가르
치는 것은 특정 직분자를 지나치게 세우는 우상 숭배적 행위이다.
예배의 중심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존재하며, 예배하는 모든 성도
는 그의 몸에 참여하게 된다. 예배가 진정한 예배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
도의 몸과 연관되어야만 한다. 주님의 몸이 의미상 현존하지 않는 예배는 진
정한 예배가 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이 없이는 결코
참된 예배가 이루어질 수 없다
예배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성찬이 존재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초로 한 실존
적 의미를 지닌다. 말씀에 의한 올바른 성찬의 의미가 없으면 진정한 예배
가 구성될 수 없다.
예배 시간에 나누어지는 주님의 몸은 아무에게나 나누어지지 않는다. 즉 하
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성찬으로 나누어지는 주님의
몸은 지극히 폐쇄적이
다.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백성들만 그에 참여하게 된다.
올바른 성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말씀사역과 연관된 장로직분을 맡은 형제
들의 기본적인 신앙이 확립되는 것이 중요하다. 장로가 성도들의 가정을 심
방하는 것은 단순히 가정방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심방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성찬에 참여하는 의미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에서 장로직분과 그들로 인한 심방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성도들의 삶을 통해 민감하게 상호 연결
되어 있어야 하며 그들 가운데서 진정한 성찬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의미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성찬이란 진정한
성찬일 수 없다. 대형 교회에서 개개인 성도들의 삶은커녕 서로 얼굴과 이름
조차 모르는 형편에서는 성도들의 삶이 상호 연결될 수 없다. 심지어는 예
배 시간에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함
께 성찬을 나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교회 공동체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의 의미를 알
지 못한 채 아무런 의미 없는 형식만 취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도리어 교회의 교회됨을 헤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성찬이 진설되지 않고, 예배 가운데 올바른 성찬의 의
미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 모임은 인간들을 위한 단순한 종교적 집회에 지나
지 않는다.
III. 결론
신학자들은 우리 시대의 교회를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가 교회다움을 회복하는데 신학적 도움을 줄 수 있다.
현대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교회의 머리로서 온전
한 기능을 하도록 용납하지 않고 있으며, 예배 가운데 주님의 몸이 그 의미
를 다하도록 허락하지 않고 있다. 타락한 교회가 입으로는 주님의 이름을 되
풀이 하지만 실상은 그 기능을 방해하고 있다.
머리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없으며 몸이 없는 인간의 삶을 상상할 수 없
다. 모든 인간은 머리를 통해 사물을 보고 들어 인식하게 되며 몸의 기능을
통해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속해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 역시 살아있는 인
격체로서 그와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단순히 ‘교회’라는 이름만 가졌다고 해서
참 교회인 것은 아니다. 십자가
를 높이 세운 훌륭한 교회당 건물을 가지고 있고, 설령 주변의 모든 이웃에
게 좋은 소문이 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진정한 교회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참된 교회는 무엇이며, 진정한 예배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
서 교회의 머리로 인정되지 않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
의 몸이 존재하지 않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
제적으로 중심이 되는 무리가 아니면 주님의 교회일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
도의 몸의 현존하는 의미가 없다면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다.
참된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달려 있는 몸으로서 주님께
서 제정하신 직분들이 온전히 기능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교회는 예수님의 머리되심을 인정하며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에 따라 자의적
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속한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주님께서 허락하
신 직분에 의해 세워져 간다.
따라서 온전한 직분 수행이 없이는 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져 갈 수 없다. 목
사, 장로, 집사 등 모든 직분자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온전히 수행함
으로
써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직분의 전체적
인 의미를 약화시키려 한다.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제정하신 직분을 불필요
한 것이라고 무시하는 자들은 자신의 감정적 진의와는 상관없이 교회를 파멸
하려고 노력하는 자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와 함께 현대 교회가 지닌 가장 심각한 병폐는 참된 교회가 점차 허물어져
가고 있으며 진정한 예배의 의미가 급격히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와 예배가 하나님과 성경 중심에서 인간과 경험 중심화 되어 변질되어
가고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그의 사역에
온전히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종교행위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됨으로써 교회의 본질을 떠나고 있다.
현대의 잘못된 교회관을 가진 교인들은 교회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당
연시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의 내부가 허물어져 가는 현실적 위기를 인식하
지 못한 채 세상의 정의를 외치는 모순에 빠져 있다. 즉 부패한 교회를 회복
하기 위한 말씀의 정화 운동이 아니라 부정한 세상에 대한 인본적 정의 실현
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참된 교회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는 것을 본질적인 목적으로
한다. 그 방법은 성경에 계시된 주님의 뜻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예배시간
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그 의미상
성도들 간에 진지하게 임하게 되며 나누어질 때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의 대다수 교회들은 그 의미를 저버리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없는 상태에서 열성을 다함으로써 예배를 종교 행사화 하
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각종 악기들을 갖추고 인간들의 능력과 아름다움
을 돋보이기 위해 온갖 노력들을 다 기울인다. 그러나 인간들의 종교적 취향
에 맞추기 위해 마련된 모든 것들은 우상이다. 그것은 외견상 화려한 모습으
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몸을 약화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교회들은 머리이신 주님께 온전히 붙어 있음으로써 인본
주의를 추구하는 세속화에 흔들리지 않기 바란다. 그리고 예배시간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 온전히 나누어지는 참된 예배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원한
다. 오직 그것을 통해 주님
의 백성들이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 소망을 두
고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