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감독이 본 세상이야기>
적과의 동침
그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는 함경도 청진에서 태어났고 나는
경상도 포항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일곱에 입대해 북한 해군에서 10년 근무했
고 나는 스무살에 입대해 남한 육군에서 3년 근무했다. 그와 나의 청춘은 얼
마나 늠름하고 패기 만만했으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넘쳐흐르는 분노와
적개심의 눈을 부라렸겠는가?
그에게 남한은 미제국주의의 괴뢰정부이기에 민족의 원수였으며 나에게 북한
은 멸공, 승공, 반공해야 할 빨갱이 나라 주적이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항상 전쟁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각자의 대뇌의 신경세포는 분단의 철조망처
럼 서로에 대한 증오로 얽혀 있었다.
우리의 청춘은 언제든 총검을 겨누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상대의 심장
을 찌르고 상대의 머리에 발포하여 서로의 생명을 빼앗는 훈련과 교육을 받는
데 바쳐졌다. 그러므로 그와 내가 만났을 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엉겨붙어 서
로의 눈을 찌르고 목을 따야 했다.
그런데… 그는 풀로 6개월을 연명하다 독오른 풀을 잘못 먹어 후유증이 남
은 깡마른 광대뼈를 가진 얼굴이었으며, 나는 36인치의 배살을 두손으로 받쳐
야 수월히 숨쉴 수 있는 영양과잉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 안타깝게도 그
와 나는 전투력을 상실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맞닥뜨렸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부라렸던 눈을 거두고 서투른 웃음을 지으며 서로에
게 내밀었던 불끈 쥔 주먹도 서서히 풀어… 그만… 악수를 하고 말았다. 그
리고 우리는 호기심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슬퍼 보였으며
삶에 지친 나의 눈도 그리 행복해 보이진 않았으리라.
그는 자신을 철민 아빠라고 소개했다. 아내와 아들을 굶주려 저 세상으로 보
내게 한 자신의 조국과 작별하고 남은 철민 하나를 데리고 국경을 넘었으나
철민 마저 고비 사막에 묻고 말았다고 했다. 그것은 억압과 굶주림만을 강요
한 북쪽 나라 때문에 생긴 아픔이었다. 남쪽 나라도 방종과 풍요에 겨워 생
긴 부작용의 허다한 슬픔들이 있었다.
재산 때문에 형제와 재판하며, 치정에 얽혀 살인을 청부하며, 깨어
진 가정 때
문에 아이들이 방치되며 정권욕에 사로잡힌 정당의 싸움으로 불신이 온 나라
를 덮고 있었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그를 이해할 태생적인 아픔이 내재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에서 동질의 슬픔을 읽었고 따지고 보면 우리는 같은 희생자
였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친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
단 서로를 탐색하며 늦은 밥을 함께 먹기로 했다. 고기에 익숙치 않아 고기
냄새도 싫다는 그는 냉면으로 그의 깡마른 체질을 보전하려 했고 나는 고기
냄새도 싫다는 그의 말에 충분히 이해한다는 가증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이며 뚝배기 불고기에 밥 두 공기를 주문하여 나의 체형을 유지하기로 했다.
배를 채운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고 사연이 구구절절했기에 밤은 속절없이
깊어갔다. 그는 슬픈 이야기를 할 때 간혹 눈시울을 붉혔지만 결코 눈물을 떨
구진 않았고 그것은 나의 신뢰를 사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내가 뜨겁게 배속
부터 솟구치는 눈물을 참아내려 얼마나 어금니를 물었던가…
믿기지 않는 많은 이야기에 나의 머리는 용량초과로 두통을 느꼈고 어느새 잠
이 들었다. 적 앞에서 아무런
방비도 없이 잠이 들다니…
내 목!
나는 소스라치듯 갈증난 목을 움켜쥐고 깨어나 무기를 찾듯 물그릇을 집어들
고 밤새 미지근해진 물로 목을 축인 다음 주위 경계에 들어갔다. 낯선 사람
이 옆에 누워 있었고 순간적으로 나는 그가 적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의 적은 흰 삼각 팬티를 두르고 엎어져 고개를 반대쪽으로 두고 잠들어 있
었으며 당황한 내가 나를 내려다보았을 때 나의 몸엔 체크무늬 사각 팬티가
입혀져 있었다. 근처에 경찰서가 있는지 구보하는 전투경찰들의 젊은 구호소
리가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나는 긴장을 가라앉히고 20년전 청춘의 병영을
떠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청춘의 나의 전우들은 모두 달랑 속옷 한 장 입
고 침상에 일렬로 정렬해 잠들었었다.
고참은 울긋불긋한 사제 팬티로 신병은 때쩔은 무명 팬티에 국방부 마크가 찍
힌 것으로… 그는 나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피부, 비슷한 머리색깔, 비슷
한 얼굴 윤곽을 하고 있었다. 좁은 방에 그와 나 단둘이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가 오래 전 전우인양 착각이 일어났다. 순간, 그가 몸을 뒤척이며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고 그는 생소한
북쪽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역시 그는 적이었다. 그의 말투와 사고 방식은 40년 넘게 나의 머리에 심장
에 적으로 입력되어 있었다. 나는 간밤에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말았다.
…/적/과/의/동/침/!
내가 막 절망감에 사로잡히려는 때 그가 부시시 눈을 떴다. 그리고 특유의 순
박한 미소를 지으며 아침 인사말을 건네 왔다. 그러자 어제 밤의 살갑던 기억
이 되살아났으며 새삼스럽게 친근한 감정이 울컥 치밀었다.
하룻밤의 동침은 우리를 끈끈한 정으로 묶어놓고 말았으며 그는 더 이상 적
이 아니었다. 무더운 하루를 예보하는 8월의 빛나는 햇살이 한참 창문을 달구
고 있었다. 우리 앞날에 전우 이상의 뜨거운 공동의 운명이 놓여있다는 것을
예보라도 하겠다는 듯이…
P.S. 이 글을 유상준 형제에게 바치며 사랑하는 자유 북한인들과 함께 나눕니
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당신 곁에는 예수님이 보내신 많은 사람들이 있습
니다.
필자 이성수 감독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영화감독으
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 양재동 화목교회의 집사이다. 작품으로는 “맨발에서
벤츠까지”
“어린 연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