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복권만 못하냐!
< 안송희 권사, 화성교회 >
“복권 가지고 철야기도에 갔던 어리석음을 깊이 회개해야 했다”
지난 5월 25일 오후 강남구민회관에서 ‘찬양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님의 작곡가들’ 소속의 작곡가 11명의 작곡발표회가 있었다. 기독교방송, 국민일보, 극동방송, 정동제일교회, 무학교회 등이 후원했다.
이날 딸 오혜림도 <나의 도움 여호와>, <한 걸음씩> 두 곡을 헵시바 중창단을 통해 발표했다. 이 자리에 부모인 오동춘 장로와 내가 참석해서 11명의 작곡가들의 은혜로운 찬양을 잘 들었다. 특히 사랑하는 딸의 두 곡이 발표될 때 감격의 눈물이 솟구쳤다.
딸은 처녀 때 루마니아에 가서 4년간 어린이 선교를 하고 돌아와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후 다시 아시아의 한 나라로 가족이 선교하러 떠났었다. 그리고 여건이 어려운 지역에서 4년 반을 선교하고 안식년을 맞이하여 지난해 8월에 귀국해 다시 선교하러 갈 재충전을 하고 있다.
덧없는 세월은 혜림이의 가족이 다시 선교지로 가야 할 시간을 앞당겨 오고 있다. 나는 딸이 발표한 두 곡의 찬양을 들으면서 딸의 고3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딸 혜림이는 어느 날 아침 내게 음대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당황했다. 오 장로의 교사 봉급으로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혜림이는 꼭 음대진학을 하겠다는 아빠 닮은 고집으로 밥도 안 먹고 도시락도 안 가지고 학교를 가며 시위를 나름대로 벌였다.
난 어느 날 기도 중에 복권 한 장을 샀다. 복권만 당첨되면 딸을 음대 보내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그런데 새벽녘 기도에 주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복권만 못하냐!” 하는 주님 말씀이 내 귓전을 때렸다. 그러면서 소천하신 화성교회 장경재 원로 목사님 설교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오윤부만 못하냐>라는 제목으로 장경재 목사님이 하신 설교였다. 창원지구 군부대장인 오윤부 대령의 빽이면 병역 연기가 될 수 있었기에 나도 오윤뷰 대령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될 때 하나님은 ‘내가 오윤부만 못하냐’ 하며 당시 젊은 장경재 목사의 가슴을 내리친 것이다.
장경재 목사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했듯이 ‘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하고 나도 깊이 회개했다. 복권을 가지고 철야기도에 갔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여자였던가를 깊이깊이 회개했다. 그리고 부모의 경제 능력이 부족하여 딸의 음악재능을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우리 부부는 딸의 음대진학을 허락하고 내외가 그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다.
시험을 보는 날 나도 딸과 함께 연세대 교정에 있었다. 시험장에 들어가는 딸을 두고 시험 잘 보도록 기도했다. 곁에 딸과 함께 레슨을 받던 지연이의 엄마가 있었다. 우리 두 엄마는 딸의 합격기도를 위해 세브란스 5층 기도실로 갔다.
지연 엄마와 함께 딸의 합격을 기도하는데 어느 여전도사가 와서 기도인도를 하기 시작했다. 다급한 세브란스 응급실 환자를 위한 기도였다. 위독한 남편, 위중한 어린이 등을 위해 나는 딸의 기도는 뒤로 미루고 위급한 환자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그리고 난 후에야 시험을 잘 봤다는 딸을 데리고 집에 왔다.
발표날이 왔다. 마음이 두근거려 집에 오지 못하고 교회 모임에 그냥 있었다. 딸이 달려 왔다. “엄마, 나 합격했어” 하며 환하게 웃는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너무 감격하여 딸을 안고 울었다. 너무 기쁜 것은 작곡과 수석합격이었다.
딸은 학부생활 내내 장학생이었다. 하나님의 작곡가들 작곡발표 작품의 찬양을 마치고 귀가 길에 목사 사위가 “오혜림 선교사 음대공부 시킬 때 고생 많이 하셨지요” 하는 말을 들을 때 딸의 음대진학 때의 잠시 고생하던 생각이 뚜렷이 떠올랐다.
자식이 선교사이면 부모도 선교사인 것이다. 오늘 8월 초에 영적 전쟁터에 나갈 딸 가족을 위해 영적 승리를 위해 밤낮 가림 없이 날마다 기도를 불같이 뜨겁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