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저항의 신앙
< 김병혁 목사, 솔리데오 글로리아 교회 >
“오직 성경에 의해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곳에 진정한 저항도 있어”
기독교 신앙을 다른 말로 정의한다면, 순종과 저항의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순종과 저항을 한데 묶는 것을 모순으로 치부하는 이도 있을 법하나, 적어도 기독교 신앙의 범주에서는 이 두 가지는 양립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의 순종과 저항은 하나의 진리를 표출하는 두 가지 방식의 독특한 양태이다. 특히나 어떤 개인이 종교개혁운동에 참여한다고 할 때에 순종과 저항은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 더구나 이 운동이 진리성과 맞닿아 있을 때에는 순종과 저항은 가장 좋은 신학과 신앙이 낳는 열매의 성격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생각하여 보라. 복음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믿음을 말하는 곳에 전적인 순종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안팎에 도사리고 있는 거짓 복음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자리에 분별 있는 저항이 없을 수 있겠는가?
진리에 대한 순종은 비진리에 대한 저항을 낳으며, 비진리에 대한 저항은 진리에 대한 순종을 꿈꾼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에 불복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나님의 법과 뜻을 기꺼이 따르고자 한다면, 인간의 부패와 악의 힘과 담대히 맞서 싸워야 한다.
진리 영역에 인간의 절충점을 찾을만한 중간 지대란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는 기독교 신앙의 이 두 가지 속성이 조화를 이루는 일을 매우 부담스러워할뿐더러 지극히 편향된 관점을 유지하는 회중이 너무나 많다. 이들은 대개 사람과 조직(교회)에 대한 가시적인 순종과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순종을 혼동한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을 위한 열심이 얼마든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열정으로 비춰질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소망이 간절한 기도로 치환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이러한 일들을 행함에 있어서 성경에 명시된 순종이라는 단어에 대해 저작권이라고 가진 듯 자주, 거침없이 인용하며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디에도 이러한 작태를 허용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다양한 명분과 이유로 거짓 복음이 좋은 복음으로 쉽사리 둔갑해 버리는 때일수록 종교개혁자들이 말한 성경적인 저항권에 대하여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개혁신앙을 항상 개혁되어가는 신앙이라고 일컬었다. 항상 개혁되어간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압축될 수 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바른 순종을 의미하는 동시에 비진리에 대하여 정당한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성도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정당한 저항권이란 무엇일까? 우선 날마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 부정이란 죄된 속성과 관련된 일체의 사고와 의식과 행위를 거부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죄에 대하여 날마다 싸우고, 날마다 죽으며, 날마다 슬퍼하는 저항의 삶을 사는 자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도는 교회 안에서도 저항권을 발휘해야 한다. 교회의 거룩성과 순수함을 해치거나 간과하려는 어떠한 의도나 행위에 대하여 저항해야 한다. 성경적인 교리를 폐하고 바른 구원의 교리를 왜곡하며, 참된 교회의 표지를 묵살하기 위해 드러난 무지나 은밀한 시도를 저항해야 한다.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선생과 그들의 모든 가르침과 악한 속임을 거절하며 추방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저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깨닫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리를 온전하게 추구하는 것보다 더 강한 저항은 없다.
왜냐하면 성도의 저항권은 근원적으로 말씀(진리)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성도의 저항은 육체적, 물리적 저항이 아니다. 힘과 권력을 통한 저항은 더더욱 아니다. 저항을 위한 성도의 유일한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성도의 참된 저항 정신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사상 위에서만 근거를 확보하며, 효력이 창출된다. 성경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저항이 불가하다. 오직 성경 안에서, 오직 성경과 더불어, 오직 성경에 의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서는 곳에 성도의 진정한 저항이 있다.
이러한 저항은 설령 핍박과 고통 가운데 처하거나 주변에 믿음의 동역자가 보이지 않거나 사람들로부터 공인(公認)받지 못하거나 모든 것을 다 잃고 홀로 남는다 할지라도 결코 상실되거나 무효화 되지 않는다.
오직 말씀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자로 홀로 서 있을 수 있다면 말이다. 물론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일이리라.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때에, 말씀에 균형 잡힌 순종과 저항의 신앙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