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가 사랑
< 이진수 목사 · 은혜교회 >
“일어서는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짜리 철부지였다. 우리 집 뒤뜰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위에서 수면까지 어른 키로 네다섯 길은 족히 넘었던 것 같다. 그렇게 깊다보니 수면은 저 멀리서 어두컴컴하게 보였다.
문제의 그날,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그 우물가에서 무엇인가를 씻고들 계셨다. 우물가에는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호호호… 깔깔깔… 그러나 나는 너무 심심했다. 우물 위에 어른 허리쯤 높이로 세워진 둥그런 우물 턱을 빙빙 돌았다. 그것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두드려 보기도 했다. 빈 두레박을 끌어올려 보기도 하고 내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두레박에 물을 담고 조금 끌어올리다가 놓았다. 그리고는 “엄마!”하고 소리치면서 재빨리 우물 턱 뒤에 숨었다. 우물 턱 위로 “풍덩!” 두레박 빠지는 소리, “어머나! 세상에!” 아주머니들 놀라는 소리, 후닥닥거리는 소리… 너무 재미있었다. 일순간에 모든 관심을 돌려놓은 것이다. 어머니도 놀라게 만들었고 아주머니들도 놀라게 만들었다. 대성공이었다.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 웃으며 일어났다. “헤헤헤…”
그러나 일어서는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어머니가 우물 턱 위에 올라서 계신 게 아닌가! 막 우물 속으로 뛰어드시려는 순간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는 벼락같이 화를 내셨다. 물론 나는 부리나케 도망쳤다. 내 등뒤로 기관총탄처럼 수없이 날아오는 어머니의 성난 목소리…
나는 그때의 일을 종종 생각한다. 어쩌면 어머니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우물 속으로 뛰어들려 하셨을까? 어머니는 수영을 못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도 내가 우물에 빠진 줄 아시고 앞뒤 생각도 해보지 않고 바로 우물 턱 위로 올라서셨던 것이다.
그때 만일 어머니께서 우물에 빠져서 잘못되기라도 하셨더라면 어쩔 뻔했나.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는 그때 확실히 알았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당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물속에 빠져서 당황하고 고통스러워 할 아들 생각에 가슴이 불타는 것 같아 이것저것 생각하실 겨를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철이 들면서 문득문득 그 사랑이 생각날 때마다 내 가슴은 뜨거워졌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아무리 역정을 내시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나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씀, 행동 하나 하나가 다 나를 사랑하는데서 나옴을 알았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부모님의 의견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늘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도 아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그 사랑은 곁길로 가려는 나를 언제나 그렇게 붙잡아주었다.
우물가에서 확인된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는 말씀이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 영원한 사망에서 나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를 희생하기까지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 지옥의 심연에서 나를 건지시기 위해 갈보리 십자가로 뛰어드신 예수님의 그 사랑! 주님은 그 사랑을 어머니를 통해 그렇게 가르쳐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