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68>
교회는 마땅히 빌 바를 알고 있는가?
이윤호_‘선교와 비평’ 발행인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의미 바로 이해하길”
117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들으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입니까?
답> 첫째, 그의 말씀에서 자신에게 계시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게만 그
가 우리에게 구하라고 명하신 모든 것을 마음을 다하여 기도합니다. 둘째,
우리 자신의 부족과 비참함을 똑바로 철저히 깨달아 그의 엄위 앞에 겸손히
구합니다. 셋째, 비록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 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들어주신다는 이 확실한 근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118문>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무엇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셨습니까?
답> 영혼과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인데,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친히 가르쳐 주
신 기도에 그것들이 다 담겨 있습니다.
119문>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무엇입니까?
답>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
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
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
멘.
요리문답은 기도의 정의에 대해서 앞서 밝힌바 있습니다. 기도는 바로 감사
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은혜의 간구입니다. 이제 기도의 방법과 내용에 대
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속의 도전을 받고 있는 교회
우리 시대는 기도의 방법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때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 많고 이 주제에 대한 강연과 집회
또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을 통해서 응답받는 기도를 위한
조건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역시 확신과 진정성일 것입니다. 즉 결과
에 대해 의심치 않고 기도해야 하며, 가식적이지 않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
다. 이것은 기도의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습니
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한 가지 교훈을 말씀하고 있
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교훈을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로 말씀하셨습니
다. 특히 고난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이 말씀을 하셨는데, 고난 중에 있는
로마의 성도들을 마음에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의 교회는 두 부류의 사
람들로부터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인 고난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
다.
한 부류의 사람은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당대 최고 문명 사회의 구성원임을
자부하던 로마인의 눈에 교회는 제국의 변방에서 생겨난 대수롭지 않은 종교
로 보였을 것입니다. 여러 신들이 일상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 삶이 곧 종교
가 되어버린 로마인들에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참 신(神)이라 부르짖는 교
회는 사회 속의 불편한 존재로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몇 년 후 발생한 로마
대화재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교회는 그곳에서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로마의 교회에 고난의 요소가 되었을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
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썼던 AD 50년대 후반은 유대인들이 새로운 도약을
도모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AD 50년 글라우디오 황제의 명령에 따라 로마시
(市)를 떠났던 유대인들이 AD 54년 네로황제의 즉위와 더불어 다시 이 도시
로 들어와 그들의 회당을 정비하며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점
차 로마인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하는 교회에게 그 유대인들은 분노했으며 오히려 교회
를 이단자로 몰아 핍박 했습니다.
말씀 계시 위에 바로 서 있어야
어떤 성도들은 로마인과 유대인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교회의 존속을 의
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나아
간 성도들은 무엇을 간구해야 했을까요?
만약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채로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면 그들의 소원은 로마
인들보다 우수한 경제적, 문화적 수준을 갖춘 교회의 모습이었을지 모릅니
다. 혹은 유대인들보다 더욱 견고한 조직을 갖추어 어떤 상대에 대해서도 대
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교회의 모습을 원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들
은 말씀에 계시된 방법으로 교회
를 유지시키시고 그의 백성을 향한 천상의
소원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 도취에 빠져있는 현대 문명
은 기독교의 신비적 비밀을 그저 하나의 신념 정도로 치부해 버립니다. 하나
님의 말씀에 민감한 대신 견고한 조직을 갖추고 있는 교회들은 참 교회를 위
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탄식에 종속되지 않는다면 세상보다 우수한 현세적 문화를 갖
춘 교회를 소망할는지 모릅니다. 혹은 상대를 힘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
력 있는 교회의 모습을 원할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때 사도 바울은 우리에
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도대체 알
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자각을 시작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의미를 하나하나
살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