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과 위증(僞證)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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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58>

증언과 위증(僞證)

“복음의 본질 훼손하는 것이 가장 큰 위증”

이윤호_‘선교와 비평’ 발행인

제99문> 제3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우리가 저주나 거짓맹세, 또는 불필요한 서약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
게 하거나 잘못 사용하지 않는 것이며, 더 나아가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어 
그러한 두려운 죄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만 사용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고백
하고 부르며 우리의 모든 말과 행실에서 그분이 영광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
다.

제100문> 맹세나 저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그들이 할 수 있
는 대로 그러한 죄를 막거나 금하지 못한 사람들에게까지 하나님께서 진노하
실 정도로 중대한 죄입니까?
답> 진실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크고 하나
님을 진노케 하는 죄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사형으로 벌
하라 명하셨
습니다.

성경에서는 세상과 교회의 관계를 법정 구조를 통해 설명하곤 합니다. 예컨
대 ‘증인’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입니다. 증인이라는 단어는 바로 
법정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증인이어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들이 그리스도
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이라 항변하는 세상에 대해 그들이 보고 
들었던 것을 증언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증인은 목격자를 의미합니다. 증인은 자신의 개인적 의견이나 추측한 내용
을 말하도록 세워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직접 보고 들
은 것을 그대로 말하여 판결의 근거가 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와 같은 증인으로서의 제자들의 책무를 주님은 그들에게 맡기고 내버려두시
지 않았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모든 면에서 제자들을 돕고 인도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보혜사
(advocate, RSV)라는 말 역시 법률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분은 무엇
보다 제자들이 목격했던 그 
내용을 정확하고 담대하게 증언할 수 있도록 그
들을 인도할 것이었습니다. 증인이라는 역할은 이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증인에게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바로 위증죄(僞證罪)입니
다.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자기 임의대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컨
대 본 것과 다른 사실을 말하거나, 본 사실을 말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덧
붙여 본질을 훼손시키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이것은 결코 가벼운 죄가 아
닙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증언에 의해서 죄 없는 자가 정죄 받고 범죄자의 
죄가 감추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리스도의 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
리는 예수님의 직접 목격자는 아닙니다. 일차적 의미의 증인은 예수님의 사
도들뿐이었습니다. 실제로 증인들의 이야기로 가득 찬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증인이라는 단어는 일반 성도들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특별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단어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들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목격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일차적 증인들의 증언 내용을 다시 전달한다는 의

에서 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의 후손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와 제상 사이에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법정에 증인으로 서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증인으로서 이 세
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증언에 관해서는, 우리의 개인적 생각이
나 판단이 아닌 그리스도의 일차적 증인의 증언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증언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다면 위증죄라는 
무거운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말하는 거짓
맹세는 바로 위증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3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
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경
솔히 일컫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훨씬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위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차적 증인들의 증언 
내용
과 다른 내용을 말하거나 그 내용에 무엇인가를 첨삭하는 경우입니다. 
많은 교회는 예배당 꼭대기에 십자가를 달아둡니다. 그것이 가지는 유일한 
의미라면 그 예배당에 모이는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무리임
을 밝히는 것입니다. 즉, 이 무리는 그곳에서 선언되는 말씀과 삶을 통해 삼
위일체 하나님을 증언하는 증인들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 증거해야

그렇지만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낸다는 사실 자체로 증인의 임무
를 다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우리 임의대로 드러낸다면 그것
은 위증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증언이 위증이 되지 않기 위해 교회는 사투를 벌여
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