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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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형 목사 (광양은송교회)

소요리문답 제11문(1)
문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1) 지혜와2) 권능으로써3) 모
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4) 보존하시며5) 처리하시는6) 일입니다. 

1) 시 145:17, 히 1:3, 시 130:8, 시6:6, 
2) 시 104:24, 사 28:29, 
3) 행 4:27-28 
4) 창 50:20, 시36:6, 잠 16:33,마 10:29-31, 롬 8:28, 
5) 느 9:6, 히 1:3, 시 36:6, 
6) 시 103:19, 마10:29-31, 엡 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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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제4문답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배웠다. 그는 신이시요, 그
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실 뿐 아니라 그
의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또한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
변하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그의 속성대로 하시는 일인데 이
러한 하나님의 속성상 불변의 완전한 계획을 세우시는 것은 당연하며 그 계
획, 그의 작정
이 의롭고 정당한 것도 당연하다. 또한 그 완전하며 정당한 작
정을 이루시려고 그에 따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것도 당연하다.

오늘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 중 그 섭리하시는 일이 어떠한지를 배울 것인데 
하나님의 섭리란 그 창조하신 만물에 대하여, 그 창조의 목적을 위하여 그것
을 보존도 하시고 또한 다스리기도 하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
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는 그 섭리의 양상, 섭리의 원칙과 과정과 궁극적 
결과,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제11문은 하나님께서는 그 창조하신 만물에 대하여 어떻게 섭리하시는 가를 
묻는 것이다. 거기에 대하여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 지
혜와 권능으로써 모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보존하시며 처리하시는 일입
니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섭리의 양상에 대한 정교한 진술이다. 하나님
의 섭리의 큰 사실에 대하여 그것을 단면적(斷面的)으로 살펴볼 때 이 진술
은 그 정확한 양상을 표현한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한 우리의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의 존재를 잘 알
지 못할 때는 일상적으로 일어
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전혀 잘못되거나 희미한 생각밖에 가지지 못한
다. 그래서 우연이라든가, 운(運)이라든가, ‘맹목적 결정(決定)’이라든
가, ‘막연한 천명(天命)’ 정도로 생각하고 비록 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
뻐하시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양상에 대하여 우선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
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보존도 하시며 처리도 하신다 는 사실이다. 그렇
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정확히 하시는 것이다. 우선 
보존하시는 일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물을 보존하실 
뿐 아니라 그 모든 행동을 보존하시는데 여기 보존하신다는 것은 옹호하신다
는 의미와 전혀 다른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만물의 행동을 억압하시거나 
어떤 행동을 그 의사에 반하여 강제하신다면 그는 만물을 창조하지 말았어야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만드신 만물의 본성을 ‘존중’하사(그것이 그 만드
신 그대로의 본성이든지 타락한 본성이든지 간에) 그가 무엇을 행하든지 그 
자유를 보장하시며 그로 그것을 제 삼자
의 간섭 없이 자기 의사로 행할 수 있
도록 보장하신다. 다만 그것을 절대로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그 행위대로 보응
하신다. 즉 처리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그 본성을 따라 
자의적으로 무슨 행동이든지 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도 통제하실 수 없으리
만큼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그것들이 언제 무슨 
행동을 할지 하나님도 알 수 없는 일이라면 우주는 혼돈에 빠질 것이며 하나
님께서 영원하고 확고부동한 계획을 세우거나 무엇을 장담하는 일은 애초부
터 성립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세계를 만드실 수는 있어도 
통치하실 수는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는 만드는 것과 심판하여 파괴하는 것
의 행동을 무의미하게 반복하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낙관적으로 생각해봐야) 세계는 어찌 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며 
그야말로 우연이 지배하는 혼돈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아무런 전망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신자들마저도 큰 틀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통치
를 믿지만 일상적으로는 이와 비슷한 생각 속에서 반응하고 행동하는 현
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작은 일을 지배하지 못한다면 큰 일도 지배할 수 없
는 것이다. “어떤 대 부대가 한 사람의 장군이 없는 바람에 전멸 당하고 말았
다. 그 장군이 올 수 없었던 이유는 이러했다. 말은 있었지만 그 말발굽에 신
겨야 할 굽 쇠의 못 하나가 잘못되어 신기지 못했다. 

결국 그 장군은 그 작은 하나의 못 때문에 올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잘 알
려진 실제적 이야기라고 한다(G. I. 윌리암슨, 소요리문답, 최덕성 옮김). 
또 하나의 예로 우리는 창세기 요셉의 이야기에서 때마침 이스마엘 상고들이 
형들과 요셉 곁을 지나가게 된 것과 그 결말을 잘 알고 있다. 이처럼 복을 위
한 일이든 화를 위한 일이든 하나님께서는 우연한 일로 보이는 작은 일 하나 
하나까지 다 주관하신다. 우연스럽게 보이는 작은 일들까지 일정한 목적을 위
하여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목적을 이룰만한 지식에서 나온 것인
데 이를 가리켜 지혜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함과 지혜와 권능으
로써 모든 창조물과 그 행동을 보존하시며 처리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