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일하시는 길
< 변세권 목사, 온유한 교회 >
“세상은 교회를 이해할 수 없고, 교회는 세상을 설득시킬 수 없어”
올 들어 차별금지법반대, 종교인 과세반대, 담임목사 세습금지 등 주요 현안들이 교회와 교단, 또 사회적으로 많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단순히 사회적 가치관으로만 보기보다는 성경적 관점에서 그 비밀을 푸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사회적 약자가 꼭 성경적 약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에 대하여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교회는 뜻밖에도 사회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세상으로부터 공격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그들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를 믿는 신자들이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합의는 찾을 수 없다. 세상은 예수를 죽였고 우리는 예수를 믿는 신자들이고 예수 없이는 아무 것도 안된다고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교회가 교회로서 가지는 정체성이 무엇인가 할 때 우리는 예수를 믿는 자들이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구원이 필요한 자라는 자기 실체에 대한 이해와 고백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다른 조건은 세울 수 없다.
따라서 ‘교회가 왜 그러는가?’라는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가 늘 반성하고 성찰해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을 그들에게 납득시켜서 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할 방법은 없다. 한 마디로 세상은 교회를 이해할 수 없고, 교회는 세상을 설득시킬 수 없다.
세상은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그 어떤 이해나 관심도 없다. 그러니까 쓸모 있고 멋있어서 교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를 믿고 내가 오늘 하나님의 백성이 된 줄로 고백하노라’는 고백이 우리 교회와 신앙의 정체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각 개인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은 공동체로 모여 교회를 존속시키며 그것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증거 해야 한다.
저 사람은 우파이고, 나는 좌파인데 어떻게 같이 있는가? 우리들의 모임에 다른 것으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데 왜 같이 모여 예수를 믿는가? 하는 모든 오해 속에서도 우리는 공동체 안에 같이 나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라고 세상에 교회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 그것으로 교회의 본질적 정체성과 대등하게 놓고 싸우지 않아야 한다. 그런 것들이 본질적으로 최우선하는 우리의 정체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롭고 균형 있는 목회와 적용으로 나아가는 시야가 필요하다.
일단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면 그 일에 대해서 답을 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를 충족시키는 종결을 찾을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이 점에 있어 우리는 모든 회의와 대화와 과정을 항상 은혜가 되어 지게 만들어 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는 깊은 배려와 생각 없이 이상하게 사람 잡는 연습부터 했다. 명예로운 길을 선택하는 연습을 하지 못했다. 그 뻔한 일에 늘 실수를 한다. 그래도 우리는 도망가지 말고 피하지 않되 그 가운데서 늘 잘 늙어가는 법을 배워야겠다.
우리는 그나마 하나님이 봐주셔서 여기까지 왔다. 무슨 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적어도 목회자들만이라도 ‘그건 그 교회 문제야! 우린 떠들지 말자!’ 그런 자세가 일단 필요하다.
사회에서는 언제나 화풀이를 교회에 한다. 설혹 그런 일이 있어도 목사는 근신을 하거나 아니면 그 일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대해서 다른 변명이나 방법은 없다. ‘그러게요!’ 하는 식의 웃는 것 외에는 어찌할 다른 방법이 없다. 그 앞에서 겁을 내지 말자. 배짱을 가지자.
예수 믿고 나면 모든 게 다 만사형통한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실력 없는 자와 모자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단지 지금 하나님이 일하시는 중인데 그것을 모르는 것은 우리가 그 일에 수긍하지 않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됐구나! 오해받게 됐구나! 그래서 힘들어서 어쩌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차라리 훌륭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길을 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길이다. 우리 교단은 행정이나 학문이 탁월하지 못해도 신앙의 자세가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어디 가서 남들과 함께 보란 듯이 나설 자리가 없다.
목회는 인내의 싸움이다. 억울하고 힘들 때 무능해고 무시당하기가 쉽다. 그때 신앙인격과 체력으로 버텨내야 한다. 이럴 때 하나님께 맡기자! 울면 우는 대로 쓰시고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쓰실 것이다. 누가 책임을 면해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우리를 이해해주지 못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이 길을 또 걸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유난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을 때 일하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