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예기치 못한 일들 닥칠 때 ‘여호와 이레’의 감동 누리길”
학창시절에 우리나라의 겨울 날씨는 삼한사온이라고 배워서 알고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 삼한사온이라는 단어가 실종되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고 연일 영하의 날씨에 마음까지도 몹시 추운 겨울입니다.
많은 눈이 내리고 몹시도 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장작불을 지피는 아궁이와 온돌방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남편은 겨울이 되면 항상 난로를 갖고 싶어 했습니다. 이웃 교회 목사님께서 난로를 구입해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신 것을 보시고 여러 곳을 기웃거리며 가격을 알아보았습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의 비싼 가격대의 난로가 있기도 했지만 나무가 타오르는 빨간 불꽃이 보여 지는 소박한 난로를 구입했습니다. 해마다 태풍으로 인하여 넘어지고 부러진 소나무들을 뒷산에서 가져오기 위해 지게도 장만 했으며 새로 장만한 난로 덕분에 그 어느 겨울보다 따뜻하고 낭만과 여유로움을 가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새해가 되어 사모세미나가 원주에서 있었습니다. 몹시 춥고 많은 눈이 내렸으며 강원도에 있어 각 곳에서 모이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모였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젊고 활기찼던 사모님들이, 여유로움과 더불어 머리에 잔서리가 많이 내리고 얼굴에 주름의 훈장으로 바뀐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모님들이 많아져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모습들에서 세대교체가 되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같은 노회 사모님들과도 만날 시간들이 거의 없었는데 한 방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교회와 가정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빠져 있던 생활 속에서 며칠간이지만 자유의 시간을 갖는 그 시간들이 우리들에게 도전이요, 생활의 활력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 날 밤에 노회 사모님들이 한 방에 다 모여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일들을 오랜 시간동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목회자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모인 우리들은 ‘너와 내가 아닌 우리’로 ‘하나’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본인들이 겪고 있는 시련과 아픔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사모님은 자기 교회 성도들이 다른 교회로 옮겨 간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또 한 사모님은 교회에서 가장 외적으로 봉사를 많이 하고 헌신적이라고 알고 있었던 중직을 맡고 있던 부부집사님들의 이탈과 목사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다음으로 목사님과 사모님을 사랑하며 목사님 부부를 영적인 부모라고 생각한다던 그들이었었는데 헌신짝 버리듯 그렇게 양심의 가책조차도 느끼지 못하면서 뻔뻔스러운 행동들로 마음들을 아프게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몇 교회 뿐의 일들만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고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이기 전에 목회를 동역하는 동역자의 고뇌를 생각하며 우리들은 같이 울었습니다.
농어촌에서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면서 사랑을 주는데도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라는 말인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일년 365일, 한 주일 아니 새벽마다 교인이 있든지 없든지 오로지 교회를 지키면서 항상 긴장 가운데 성도들만을 생각하는 목회자들의 마음을 아는 성도들이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도 해 봅니다.
그렇게 마음 아프게 하면서 속상하게 하고 떠나버린 성도들까지도 사랑하면서 말 한마디 못하고 몸과 마음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남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모님들은 연약한 여자이면서 한 남자의 아내일 뿐이었기에 우리는 하나가 되어 같이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는 간과 쓸개를 다 빼줄 것같이 하는 성도들보다 자기를 미워하는 동역자를 더 믿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모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감기로 인하여 고열과 기침으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며칠 간 먹지도 못하고 잠들지 못하면서 그냥 아프고 싶어 병원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에게까지 감기가 옮겨지자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사가 귀찮은 마음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 나는 자기 몸을 생각하지 않고 병만 키운 멍청한 사람이라고 잔소리를 듣고 말았습니다.
나 또한 어느 날,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처럼 새벽에 눈을 뜨지 않고 이대로 세상을 하직하고 싶을 때가 있어 멍청한 짓을 한 바보일 뿐이었습니다. 가장 사랑하며 믿고 의지했던 성도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말문이 막히지만 화를 낼 수도 없어 마음껏 자리에 누워 아프고 싶었지만 그럴 자유까지도 내게는 없었습니다. 모든 일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듯이 이제 자유롭고 싶습니다.
한 여름 꽃이 귀할 때 백일 동안 꽃이 핀다는 배롱나무라고도 불리는 백일홍 꽃이 있습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하지만 항상 꽃이 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또 내일을 기다리게 됩니다.
날씨가 추울수록 난로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공부할 때 양은 도시락을 난로에 얹어 놓고 점심을 즐겼던 추억도 기억하면서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합니다. 난로에 불을 지피다보니까 난로는 나무를 잡아먹는 하마입니다.
불꽃이 타오르다가도 주위가 서늘하다보면 불꽃이 사그라져 있고 불꽃이 꺼지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조금씩이라도 나무를 넣어주어야만 우리들에게 따뜻함을 줍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타오르는 불꽃이 다 사그라지고 결국은 재만 남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닥칠 때도 있겠지만 그 때마다 ‘여호와 이레’이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믿으며 마음 아파했던 지난날들도 그리워 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