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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힘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엄마라는 존재는 없는 확률도 만들어 내는 독특한 능력의 소유자”

 

 

제가 근무하는 병원이 새롭게 큰 건물을 지은 후, 은퇴를 앞둔 저는 교수실을 전망이 좋은 남쪽 방으로 배정 받았습니다.

 

따사한 봄날 오후 새 교수실에서 밖을 내다보며 오랜만에 분위기 좋게 차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1층 안내 데스크에서 온 전화인데 30년 전 제가 담당했던 환자의 가족이 부산에서 인사차 왔습니다. 보통 환자 보호자와의 면담은 외래시간에 하고 있지만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경우라 지체하지 않고 내려갔습니다.

 

50대 후반 부부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밝은 웃음으로 다가옵니다. 부부의 얼굴을 보니 누군지 금방 생각이 납니다. 오랫동안 많은 환자를 보았기 때문에 환자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때로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습니다.

 

제가 80년대 초 처음 대학에서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고 병원 근무를 시작한 첫날, 경남지역에서 20대 후반의 교사부부가 8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기는 난산으로 태어난 아기로 진찰 당시 벌써 뇌성마비아의 비정상 발달 모양을 보이고 있으며 혼자 걷지도 못할 것 같은 소견을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종합적인 검토를 한 후 퇴원하는 날 부모에게 조기 재활 물리치료가 아기의 운동발달에 얼마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지 열심히 권유하였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희망을 갖도록 열심히 설득했지만 속으로는 과연 아기가 잘 적응할지, 또 부모가 일주일에 2-3회 이상해야 하는 그 어려운 재활 치료를 감당하고 또 경제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치료를 하는 시설이 대도시에만 있었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재활치료를 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큰 도움을 주지 못해 안쓰러운 마음을 가진 저에게 엄마는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퇴원했습니다. 이 환자는 교수로 임용되어 처음 진료를 시작하는 날 지방에서 찾아온 첫 환자여서 기억에 나는데, 특히 그 때 엄마의 미소가 허전하게 느껴져 뇌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엄마는 어떤 획기적인 치료를 기대하고 왔었던 것 같은데 희망은 주었으나 너무나 힘든 숙제를 받았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때의 엄마와 아빠는 이제 반백의 머리와 이제 노년에 가까운 외모가 되었으나 환한 얼굴로 찾아 왔습니다. 같이 온 청년은 한눈에 봐도 뇌성마비인 것을 알아 볼 수 있지만 혼자서 정상적 보행을 하고 또 언어 소통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청년은 대학에서 복지학과을 다니고 있는데 내년이면 졸업을 합니다. 그리고 복지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보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저는 너무 깜작 놀랐습니다. 더구나 그 청년의 성품이 너무 밝아서 기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그 때 재활치료가 운동발달을 정상처럼 가져갈 수 있다는 제 이야기에 큰 희망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는 절망하지 않도록 격려해 주어서 이 자리에 왔다고 고마워하며 꼭 한번 아들을 보여주고 싶어 찾아 왔다고 합니다.

 

휴게실에 앉아 살아 온 이야기를 하는데, 부부교사인 까닭에 여러 군데 근무지를 옮기느라 재활치료에 갖은 고생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행히 지적장애가 없어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 참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치료비를 감당하느라 여유로운 생활은 못 했으나 아들로 인해 행복하다고 활짝 웃는 얼굴에서 지난 날 제가 기억했던 허전한 미소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환자의 치료계획을 세울 때 객관적인 통계를 신뢰합니다. 또한 그 통계에 근거하여 앞으로의 예후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저라면 낮은 확률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환자실에서 만난 엄마들을 보면, 엄마는 한 가닥의 가능성만 보여도 그 끈을 놓지 않습니다. 의사가 아닌 엄마는 아기의 치료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이 번 경우에도 봅니다.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는 없는 확률도 만들어 내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