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아버지_전정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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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 아버지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간절하게 아버지 찾는 아들의 마음 느낄 수 있어”

 

 

한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이제는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하루는 환자의 아빠가 자기는 작은 교회의 부목사라고 하시며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책은 이스라엘에 관한 책이었는데 너무 흥미로워서 그 날로 다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는 유대기독인들이 부르는 찬송곡이 들어 있었고, 그 중에서 주기도문 찬송이 눈에 크게 들어 왔습니다. 유대기독인들의 주기도문 곡이 어떠할까 아주 많이 궁금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음악을 전공한 큰며느리에게 부탁하여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 부른 노래를 얻었습니다.

 

Malotte의 주기도문 찬송은 우리에게 친숙하며 많은 교회에서 예배의 마지막 부분에 송영으로 같이 찬송하고 예배를 끝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곡을 부르거나 성가대의 찬송을 들을 때마다 감동을 받습니다. 이 곡을 들을 때면, 저는 장엄하고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으며 참 좋은 찬송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Malotte의 곡을 들으면 유럽의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당과 그 안에서 부르는 성가대의 장엄한 찬송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유대기독인들의 곡을 처음 듣는 순간 역시 장엄하고 숙연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절하며 간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한다기보다 기도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애절하며 간절한 기도를 생각해보면 저는 예수님 예화 속에 나오는 세리와 바리새의 기도 중 얼굴을 들지 못하는 세리의 기도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세리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제가 지금 세상에서 부족함 없이 잘 살면서 주님의 제자처럼 살지 못해, 기도할 때마다 늘 떳떳한 마음이 들지 못하는 내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가사에 대해 알고 싶어 이스라엘 문화원 박 선생님께 부탁하여 자료를 얻었습니다. 가사는 신약 성경 현대 히브리어 역본(하브리트 헤하다샤 모데르니)의 마태복음 6장 9-13절의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헬라어 원본처럼 가사 속에 서두에서 “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1, 2인칭 대명사가 많은 가사는 아버지를 대면하고 아뢰는 아들을 연상케 하였으며,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와 기도하는 아들 사이가 가까운 사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아버지를 찾는 아들의 마음이 가슴에 느껴졌습니다.

 

기도하는 아들과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를 가깝게 느끼게 해주는 호칭은 수난 전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아버지를 “아바” 하고 부르는 구절에서 잘 나타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바”는 현재 이스라엘에서 아이나 어른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고 있답니다.

 

노래는 곡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예로 고전 음악을 듣거나 외국 성악곡을 감상할 때 가사 전달이 잘 안 되더라도 듣는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찬송가는 일반 노래와 다르게 곡뿐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가사를 통해 은혜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송은 노래로 하는 기도라고 하는 말에 저는 크게 동감을 합니다.

 

Malotte 주기도문 찬송을 들을 때나, 또는 부를 때 저는 늘 가슴이 찡합니다. 더구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 본 유대기독인들의 주기도문 찬송을 들으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동을 배웠습니다. 기도는 높고 존귀하신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보듯이 하나님을 가깝게 느끼며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찬송뿐 아니라 주기도문을 할 때는 주문을 외우듯이 습관처럼 건성 건성하지 말고 가사 하나 하나를 생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습니다.